[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소리를 공부하면서 기필코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야 말겠다는 뜻이 깊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부족한 것은 결코 어려운 고비가 될 수 없었다.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한 번만 들어도 능수능란하게 따라 했지만, 나는 수십 번을 들어도 깜깜했다.”(본문 중에서) 사진은 경주 남산 솔밭에 움 틔운 솔씨 <사진 배일동 명창>

예술이란 평생을 끊임없이 가꾸면서 새로운 영감을 도출해가는 지난한 작업이다. 재주를 타고났더라도 그것은 대수로울 것이 못 된다. 재주의 우열이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얼마만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고 실천하고 있느냐이다. 그런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묻고 토해내야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 음악가도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기반을 공유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을 발전시킨 예술가였다. 천재도 인공의 수고를 아낌없이 다하여 마침내 천공의 신묘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요즘에도 간혹 대중매체에서 국악 신동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커서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에겐 오히려 그 재능이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재능으로 음악적 기교를 좀더 빠르게 깨칠 수는 있지만 성실하게 노력하며 부단히 정진하는 지혜는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개 재능을 더욱 훌륭하게 발전시키는 자는 보기가 드물다. 그들에게 재능은 유혹하는 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스승을 제대로 만난 것이 20대 후반이었으므로 소리를 매우 늦게 시작한 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무모한 모험을 걸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그땐 오직 소리밖에 없었고 소리만 하며 살고 싶었다. 비록 늦게 시작했어도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직 좋아한다는 그 신념만으로 겁 없이 달려들었다.

주위에서는 모두 늦었다고 하면서 언제 소리를 다 익히냐고 걱정했지만, 그런 우려의 조언도 이미 소리에 미친 놈에겐 귓전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득음 같은 것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더디게 성음을 알아간다 해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고, 오직 소리만 할 수 있다면 복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것은 밤을 새워서라도 기어이 알아갔다.

명창들이나 소리에 일찍 입문한 선배들의 멋진 소리들이 한없이 부러웠지만, 그것은 단지 부족한 내 소리 공부의 참조에 불과했다. 언젠가는 진정한 내 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거라는 신념으로 오로지 소리만 해댔다.

하지만 소리만 죽어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연조가 늘어날수록 실감했다. 해도 해도 늘지 않으니 재주가 없어서 이럴까 하고 수없이 낙심하면서도 위안을 삼았던 것은, 소리를 하면 그냥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수행(修行)의 도(道)로 삼았기에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었다.

소리를 공부하면서 기필코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야 말겠다는 뜻이 깊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부족한 것은 결코 어려운 고비가 될 수 없었다.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한 번만 들어도 능수능란하게 따라 했지만, 나는 수십 번을 들어도 깜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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