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어중간의 경계상에 있다”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과 발성은 이렇게 변화하는 일년과 하루의 우주운동의 질서를 여지없이 본떠서 따르고 있다. ‘궁상각치우’와 12율려의 음계도 다름 아닌 지구가 자전 공전하면서 변화하며 작용하는 일년의 시중을 음가로 계산해놓은 것이다.”(본문 가운데) 이미지는 태양계.

일체의 모든 것은 경계상에 놓여있다. 경계를 크게 나눌 때 이쪽과 저쪽을 둔다. 이쪽과 저쪽 경계상에서 가운데는 과연 어딜까? 양쪽의 딱 중간이 가운데일까? 우린 이쪽과 저쪽을 가릴 때 중(中)의 어중간(於中間)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린 시시각각 변하는 어중간의 경계상에 있다.

그 어중간에서 이쪽 저쪽의 경계 분간을 못할 때 실기(失機) 하고 사리분별이 어두워진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 어중간이 어디란 말인가? 이쪽과 저쪽을 품고 있는 그 하나가 바로 어중간이고 시중(時中)이다. 그 하나 속에서 경계의 각축이 일어난다.

옛사람들은 해와 달의 음양 사이에 놓인 지구를 어중간으로 보았다. 지구는 해와 달 사이를 끊임없이 돌고 돌며 춘하추동 생장수장하며 변화운동을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계상의 그 중점이 바로 어중간이라 했고, 시중이라 했다.

음악에서 악곡이 전개되는 과정의 모든 음계는 바로 그 어중간에 있는 시중의 음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 음계가 품고 있는 시중의 이쪽 저쪽의 상황을 잘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시중의 음계를 조율하지 못할 때 음치라고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일년의 시중과 하루의 시중을 분명하게 말해놓았다. 그것도 역시 해와 달 사이를 돌고도는 어중간의 지구 입장에서 말해놓았다. 일년 중 봄을 음중지양(陰中之陽)이라고 했고, 여름을 양중지양(陽中之陽), 가을을 양중지음(陽中之陰), 겨울을 음중지음(陰中之陰)이라 했다. 이것은 우리가 서있는 우리나라의 어중간에서 본 시중을 말한 것이다.

동짓날부터 1양이 생긴다고 했다. 봄의 시중은 해가 남반구로부터 서서히 북반구로 다가오기 때문에 아직은 추운 음(陰) 가운데 있어 음중지양(陰中之陽)이라고 했고, 여름은 해가 완연하게 북반구 쪽으로 기울어 비추기 때문에 시중을 양중지양(陽中之陽), 가을은 해가 북반구로부터 서서히 남반구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양중지음(陽中之陰), 겨울은 해가 남반구로 완연하게 기울어져 북반구가 추워졌기 때문에 음중지음(陰中之陰)이라고 했다.

하루의 시중도 해가 땅을 비춰오기 시작하는 자정에서 6시까지를 음중지양, 해가 땅을 달구는 6시부터 정오까지를 양중지양, 해가 땅을 달구고 서녘으로 사라지는 정오에서 오후 6시까지를 양중지음, 해가 완연하게 잠긴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를 음중지음이라고 했다.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과 발성은 이렇게 변화하는 일년과 하루의 우주운동의 질서를 여지없이 본떠서 따르고 있다. ‘궁상각치우’와 12율려의 음계도 다름 아닌 지구가 자전 공전하면서 변화하며 작용하는 일년의 시중을 음가로 계산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궁음을 삼분손익(三分損益) 하여 나머지 음들이 생겨난다. 여기서 삼분(三分)이 중요하다.

무엇을 삼분한다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중(中)이다. 상중하의 중(中)이고 저쪽과 이쪽의 어중간을 삼분하는 것이다. 높고 낮은 모든 음계는 스스로 음계상에서 시중(時中)에 놓여있으면서 그 한 음 속에서도 상중하의 경계를 품고 있기 때문에 삼분(三分) 하는 까닭이다. 그 한 음속에 있는 상중하의 시공을 잘 분할하여 맛깔나게 음을 갖고 노는 것을 보고 ‘성음 놀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전체이며 전체를 쥐고 있는 중(中)이다. 상중하(上中下) 좌중우(左中右) 전중후(前中後)의 중점을 집중하고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중이다. 그래서 하나의 음계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 육합(六合)의 어중간을 품고 있는 한 음계 속의 경계를 맘대로 쥐락펴락 하는 것이 악공(樂工)의 일이다.

하나 속에는 수많은 각(角)을 지닌 경계가 함축돼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리철학자들은 하나는 원이라 했다. 원은 만물을 생성해내는 자궁과도 같다고 했다. 원은 360도로 분할해놓았다.

각도(角度)는 이쪽과 저쪽 두 점이 서로 만나야 각도가 생긴다. 360도 어딘지 모르는 어중간에서 두 점이 만나 하나의 선을 이루어 각(角)을 낸다. 주역의 64괘는 바로 지구가 해와 달의 음양 사이를 돌고 돌며 일어나는 일년의 기운을 괘상으로 표상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도(度)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며 생겨나는 황도상의 거리 차이라 했다. 그래서 360도 경계상에 있는 모든 각도의 에너지는 다르다. 음계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점점 직각으로 갈수록 음이 높아지고 그와 반대로 될 때 음이 낮아진다.

한국 전통춤은 바로 이러한 우주운동의 질서를 본뜬 춤이라고 본다. 한국춤은 춤추는 자신이 하나의 중(中)이 되어 좌우 손발로 상중하 좌중우 전중후의 경계를 손짓 발짓으로 표현해내는 예술이다.

춤에서는 왼손 오른손의 좌우세를 매우 중요시한다. 이손 저손을 실없이 휘젓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나’라는 본인 몸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을 좌청룡 우백호로 칭하고 오른손은 에너지를 끌어당기어 수축통일하는 음(陰)쪽으로 보았고 왼손은 오른손의 수축하는 힘으로 발산 팽창하는 양(陽)쪽으로 보았다.

즉 오른손은 화(火) 기운을 끌어당기는 쪽이고, 왼손은 물(水) 기운이 뻗어 올라가는 쪽으로 보았다. 오른손이 실재 힘을 쓰는 쪽이 되고, 왼손은 오른손의 부림을 당하는 쪽으로 보았다. 이것은 해와 달과의 운동과도 연결된다.

지구는 태양을 하루에 한바퀴 올며 1도씩 자전하고 일년에 걸쳐 360도 공전한다. 달은 지구를 서에서 동으로 하루에 약 13도씩 자전하면서 27.3일만에 공전한다. 달의 역할에 따라 지구의 생명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 몸이 해와 달의 가운데 있는 지구처럼 가운데가 되고 좌수(左手)가 해가 되고, 우수(右手)가 달이 된다. 춤출 때 좌우수를 양쪽으로 활짝 펼 때는 지구가 보름날이 될 때이다. 지구를 중점으로 태양과 달이 반대편에서 일직선으로 있을 때가 지구는 보름날이 된다.

또 태양, 달, 지구 순으로 나열될 때는 달이 안 뜨는 초하루가 된다. 초하루부터 점점 차오르면 달이 차오르고 보름을 넘어서면 달은 점점 기울어지며 삭망(朔望)의 주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달과 해의 각도와 위치에 따라 지구의 계절과 변화작용이 일어나듯이 그 형태를 그대로 본뜬 것이 한국춤이다. 좌우수가 오고가며 일년의 생장수장하는 가운데 인간의 희로애락과 만물의 온갖 기운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 한국춤이다.

해는 양(陽)이고 동(動)이고, 달은 음(陰)이고 정(靜)이다. 지구는 이 음과 양을 함께 안고 돌기 때문에 음중양(中陰陽)이고 정중동(靜中動)이고 양중음(陽中陰)이고 동중정(動中靜)이 번갈아가며 변화작용을 한다.

한국춤에서 한사코 정중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구라는 하나 속에 수축된 음양동정(陰陽動靜)이 서로 교차하면서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훈민정음해례본>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초성, 중성, 종성 글자가 어울려 이루어진 글자로 말할 것 같으면 또한 동과 정이 서로 뿌리가 되고 음과 양이 엇바뀌어 변하는 뜻이 있으니, 동이란 하늘(天, 초성)이요, 정이란 땅(地, 종성)이며 동과 정을 겸한 것은 사람(人, 중성)이다.”(以初中終合成之字言之. 亦有動靜互根陰陽交變之義焉. 動者. 天也. 靜者. 地也. 兼乎動靜者. 人也)

참 기막힌 철학이다. 우리의 언어를 비롯해서 모든 문화의 정신철학이 이렇게 우주정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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