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예술가의 시대적 책임

어린 잠자리가 오리락 내리락 바쁘다. <사진 배일동>


곧은 나무가 먼저 도끼에 찍히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른다

예술 인생에서는 대학 시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일류대학이면 어떻고, 삼류대학이면 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에 맞는 예술 학습환경이 충실하게 이어질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소리 세계의 재능과 이론적인 미학과 철학 등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지성적인 변별보다는, 무조건 세태가 차등지어 놓은 학교에 가기 위해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부모와 선생들이 보다 솔직하고 냉철해야 우리의 예술 학동들이 제대로 된 예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재능이 빨리 무르익는 것도 분명 어딘가에 허점이 있다. 근간이 튼실한 나무라도 열매가 부실해질까 염려해서 쓸데없는 지엽들은 과감히 자르고 솎아내어 진액의 허비를 미리 막아주는 게 농사짓는 사람의 상식이다.

이렇듯 잘 자라고 있는 나무도 곁가지를 잘라내듯이, 재주가 출중한 예동들도 큰 쓰임을 위해서는 오히려 그 재주의 빛남을 눌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재주가 뛰어난 아이일수록 더디 가야 좋은 재목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옛말에 “곧은 나무가 먼저 도끼에 찍히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른다”는 말이 있다. 재능 있는 자는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으로 진력이 나서 그 예술이 일찍 지게 된다는 뜻이다. 나무가 잘나고 곧아서 쓰임이 좋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물맛 좋은 우물은 사람의 손때를 많이 타서 금세 흙탕물이 되고 또 일찍 마른다. 따라서 귀중한 보옥일수록 깊이 간직하여 진정한 쓰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크게 쓰이고 널리 이롭다. 정작 힘써야 할 때 맥을 못 추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너무 서둘러 많이 써서 그런 거다. 너무 일찍부터 기를 풀어버리는 바람에 정기(精氣)와 신기(神氣)가 흩어진 것이다. 그 결과, 정작 소리의 맛을 알고 힘을 써야 할 때는 마음만 앞서고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훌륭한 예술가는 예술 목표를 한낱 재주의 뽐냄에 두지 않고 인생의 진정한 진리 추구에 가치를 둔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오로지 예술에 심취하고 성명(性命)을 보양(補養)하여 자기가 속해서 살아가는 사회의 순화(純化)에 기여할 것을 도모하며 살아간다.

예술가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를 선도할 책임이 있다. 자신의 타고난 재주에 아름다운 정감과 심미를 담아 예술로써 발양케 하여, 시대의 풍조를 순화하는 데 참여해야 진정한 광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술이 꼭 뛰어나지 않아도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자기의 근량에 맞게 임하여 자기가 가는 길에 정성을 다하고 충실하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판소리처럼 수준 높은 예술을 경영하는 소리꾼은 어릴 적부터 예술 정신에 고운 물이 배도록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된다. 삼베에 물이 들면 탈색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정서에 한번 물든 것은 옮기기가 쉽지 않으니, 처음부터 훌륭한 감성과 예술 심미가 배양되도록 우리는 항상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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