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 명창의 쓴소리 “실속 없는 교육프로그램에 내모는 대학”
예전 선비들의 대학지도(大學之道)를 보자! 재명명덕(在明明德)하고 재친민(在親民)하여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라 하잖던가. 밝은 덕을 더 밝게 닦고, 그 밝은 덕으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어 덕을 더욱 빛나게 하고, 마침내 지극한 선에 머무르고자 하는 뜻에서 큰 학문을 한다고 했다.
그런 큰 뜻까지야 못 미칠지언정 자신이 하는 예술의 정신이라도 깨치게 하는 대학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대학 교육은 대학(大學)이 아닌 소학(小學) 교육이 아닌가 싶다. 소학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하는 탁상공론의 학문이다.
대학이란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 대학지도이다. 사람이 되고 사람을 위하고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이 바로 대학이다. 특히 예술은 인간의 정서를 대변하고 위로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쓰임이 있는 큰 학문을 해야 마땅하다. 예술이란 실기와 이론을 모두 갖춰야만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학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현명하고도 예지(叡智) 넘치는 예술적 영감과 철학을 배워서 나와야 한다.
사실 학교처럼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훌륭한 선생들이 많아서 학생들은 그들의 예술적 경험과 예술 철학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교 교육을 보면 매우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진학한 제자들에게 별도의 공부를 제시하며, 또 그에 관한 독서와 과외를 권하고 있다.
예술가의 길을 택한 사람이 별 쓸모 없는 탁상공론에 미련스럽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소리에만 불철주야 매달려도 깨칠까 말까 하는 판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공부를 해서 실속을 차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졸업 후의 일까지는 책임 지지 않는다. 생각 없이 학교의 프로그램대로 따라 했다가는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 쉽다.
요즘 국악 대학을 졸업한 예술 학도들의 처지를 한번 보라. 취직할 예술단체는 턱없이 부족하고 활동무대도 빈약하다. 전공은 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졸업생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음악 활동을 하다가 시원치 않으면 그마저도 때려치우는 형편이다.
정말 할 일 없이 방황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예술가에게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단체에 취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열이다. 사회가 나를 필요치 않아도, 취직이 안 되어도 예술 하나만 의지하고 재미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학 4년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신력을 키워줘야 한다.
한창 판소리 공부에 빠져 있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실속 없는 교육 프로그램에 이끌려 허망한 세월을 보내고 있지나 않는지 엄정히 되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