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지극한 예술은 피눈물의 산물”

선암사 뒤칸 통시 변소 측칸 해우소, 통풍창 틈으로 매화꽃이 피었다


독공하면서 정말 무서운 것은 게으름이고,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헛된 망상이다. 이동백 명창은 소리하는 틈틈이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그냥 심심파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여러 매체들과 나눈 인터뷰에서도 누누이 말한 바 있다.

소리란 것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음양오행의 질서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그러한 학문에 관계된 책을 읽었지 않나 싶다. 얼마 되지 않는 옛 명창들의 인터뷰 중에 소리 공부를 하면서 독서했다는 말은 내가 알기로는 이동백 명창이 처음인 것 같다. 그때 나이가 고작 열아홉 살이거나 스무 살쯤이라고 하니, 지금 소리꾼들의 공부 환경과 정신적 환경과 비교해봤을 때 하늘과 땅 차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이동백 명창은 전무후무한 성음을 남겨놓은 것이다.

명창은 또 말하기를, 목에서 피가 많이 나오고 몸이 부어도, 간간이 좋은 소리를 발견하는 재미로 공부했다고 한다. 나는 목이 붓고 잔뜩 쉬기는 했어도 피가 나온 일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예전 분들은 먹는 것이 부실하고 연습량이 많아 간혹 피가 날 정도로 공부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피가 쏟아졌다거나 피를 토했다고 한 말들은 왠지 믿음이 안 간다.

나는 하루에 단 두 시간만 자고 온종일 소리만 엄청나게 질러댔어도 그런 적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옛말에 ‘고금지예개혈루소성'(古今至藝皆血淚所成)이란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지극한 예술은 모두가 피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뜻이다. 목에서 피가 났다는 말은, 피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침이나 가래에 약간의 혈흔이 보였다면 혹시 모를까, 피를 토할 정도라면 그것은 폐병이나 무슨 심각한 속병이지 소리 연습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똥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야 민간치료가 대부분이어서 몸이 붓거나 아리면 약간의 똥물을 먹었겠지만, 수시로 먹었다는 말은 왠지 수긍이 안간다

나도 염금향 스승 문하에 있을 때 박영수 소리꾼과 박성호 춤꾼과 함께 재래식 방법으로 깨끗이 거른 똥물을 마신 적이 있는데 곧바로 토해버렸다. 똥물은 아무리 대통으로 잘 걸러낸다 해도 독이 강해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이러한 얘기들은 모두 소리꾼이 목을 틔우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들려주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말들은 과장된 말일지언정 그래도 아름답게 들린다. 모두 혹독한 예술 수련 과정 중에 나온 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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