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파노라마⑥] 국민의힘의 ‘오랜 전통’과 ‘요즘 진통’

1997년 7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당선된 이회창 대표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

국민의힘의 정치적 뿌리는 민주정의당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민의힘 홈페이지는 국민의힘이 걸어온 발자취를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해서 한나라당이 출범한 1997년 11월 21일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민주자유당이 이름을 바꾼 것이고, 민주자유당은 3당합당으로 1990년 1월 22일 태어난 정당입니다.

민주자유당은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야합한 정당입니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주도한 민주정의당은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명분으로 여당에 투항한 통일민주당은 민자당 이름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

신민주공화당은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고, 김영삼 대통령이 군부독재의 흔적을 지우고자 민자당을 자신이 주도하는 신한국당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팽’당했습니다. 김종필 총재가 창당한 자민련은 DJP연대를 통해 공동정부 총리를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등 세명 배출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보수정당은 당내에 확실한 주자가 없으면 외부인사 영입으로 돌파했습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때부터 오늘날까지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당명이 바뀌거나 이합집산하는 사이 대선에 출마한 후보는 다섯 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세 명은 영입 후보로 분류되고, 두 명은 내부 후보로 볼 수 있습니다. 영입 후보 가운데 두 명이, 내부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영입 후보 세 명은 이회창(제15대, 16대 대선 후보) 박근혜(제18대 대통령) 윤석열(제20대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제15대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1998년 4월 2일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다섯 차례나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부모 후광으로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고, 대선주자급 영향력을 가졌기에 영입 후보로 볼 수 있을 겁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 잇달아 출마한 이회창 후보는 영입인사였습니다. 대법관이던 이회창 후보가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제8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때였습니다. 1989년 동해시와 영등포구 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민정 평민 민주 공화 4당의 후보자 전원을 고발했고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서면경고를 했습니다.

이회창 선관위원장은 1989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경고서한을 보내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문민정부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감사원장과 국무총리 재직시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이 잦았고, 마침내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면서 사퇴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시민들에게 ‘대쪽’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내부 후보 두 명은 이명박(제17대 대통령)과 홍준표(제19대 대선 후보)입니다. 비례대표로 정치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 신화’와 서울시장 재직당시의 업적(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 개편)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경선에서 꺾을 수 있었습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앞섰습니다. 각종 비리로 수감 중 형집행정지상태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으로 정치를 시작해 다섯 차례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제15대 국회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되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네 차례입니다. 특정한 계파에 줄 서지 않고도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 대선 후보를 했습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앞섰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뒤졌습니다.

홍준표 시장은 중앙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있지만 지금도 차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에는 홍 시장 외에도 유승민 원희룡 나경원 등 내부 후보가 될만한 정치인이 여럿 있습니다. 지금은 고난을 겪고 있는 이준석 대표도 ‘박근혜 키즈’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10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대표가 되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길로 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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