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파노라마⑦] 역대 선거 재검표 이야기
7월 14일 제8회 지방선거 경기도 안산시장 선거 투표지 재검표가 실시됐습니다. 제종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재검표를 요구한 건 “개표 당시 검표기 개표에서 424표 차이로 이겼는데, 잠정 무효표를 수기로 검표한 뒤 181표 차로 역전됐기 때문”입니다.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지는 않고 표 차이만 179표차로 2표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재검표에서 당락이 바뀐 경우는 딱 세번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제14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서울 ‘노원구 을’ 사례입니다. 대법원 재검표 결과 군부재자 투표에서 임채정 후보의 득표 100표 한 묶음이 김용채 후보의 표로 분류됐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36표 차로 졌던 임 후보가 172표 차로 이겼습니다.
재검표 결과가 발표된 날이 1992년 7월 20일이었습니다. 해직 언론인 출신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임채정 의원은 4선이던 제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이 과반 제1당이어서 후반기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제14대 총선 때 재검표로 당락이 바뀌지 않았다면 3선으로 선수가 적어 국회의장 되기가 힘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남장여성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김옥선 의원도 재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총선에서 떨어졌으나 선거소송으로 1968년 6월 3일 재검표 결과 개표 착오가 발견되어 총선 1년 만에 등원했습니다. 이원장 의원은 당선무효가 됐습니다. 3번째 도전 만에 국회의원이 된 김 의원은 3선까지 했고,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했습니다.
초선 때 1년이나 늦게 등원했던 김옥선 의원은 재선(제9대 국회) 때는 중도사퇴하기도 했습니다. 1975년 10월 8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에서 김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을 ‘딕테이터(dictator 독재자) 박’이라 부르면서 유신체제를 비판했습니다.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이 김 의원 발언에 아우성을 쳤습니다.
본회의장이 소란해져 김옥선 의원은 질의를 더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정일권 국회의장은 김 의원 발언의 일부를 속기록에서 삭제했습니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김 의원 발언이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이적 행위라며 징계를 추진했습니다. 신민당은 이에 맞서 김 의원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반대했습니다.
정일권 국회의장이 공화당과 유정회의 김옥선 의원 제명안을 본회의에 회부했습니다. 신민당 의원 누구도 그 과정을 저지하지 않았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오히려 김 의원에게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김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김옥선 파동’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유신독재에 도전하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이었습니다.
재검표로 당락이 바뀐 또 하나의 사례는 유신체제 첫 선거인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나왔습니다. 대전의 박병배 4선 의원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해 재검표 결과 24표차로 친여 무소속 임호 후보와 당락이 바뀌어 5선이 되었습니다. 위의 세 경우는 투표용지를 수검표해 다시 계산하는 방식이었으나 다른 재검표 방식도 있습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인천 ‘연수구 을’에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2,893표 차로 패배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전투표 조작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선거무효소송 재검표에서 재판부는 수만 장의 사전 투표용지에 인쇄된 QR코드 정보와 중앙선관위가 보관 중인 QR코드 정보를 직접 대조했습니다.
2021년 6월 30일 대법원 재검표 결과 민경욱 의원의 주장처럼 전산조작으로 보이는 투표용지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선관위가 부여한 일련번호 이외의 일련번호가 적힌 사전투표지는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원장·투표관리관 등의 직인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무효표 294장이 발견됐지만 당락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