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파노라마④] ‘사이다발언’ 이재명과 시대정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 후보의 거친 발언이 계속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경쟁자인 박용진 후보와 강훈식 후보가 이 후보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고, 국민의힘도 비판 대열에 섰습니다. ‘저소득층 국민의힘 지지’ 발언에 강훈식 후보는 “보수정당은 남녀·세대를 갈라치기하고 ‘혐오’를 이용했다”며 “같은 인식이라면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용진 후보는 “저소득층은 저학력이고, 따라서 왜곡된 정보와 정보의 비대칭으로 제대로 된 사리판단을 못한다는 선민의식, 빈자를 향한 혐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발언이 앞뒤가 잘려 왜곡 전달됐다며 “누가 분열·갈등을 획책하는가. 무지라면 비판받아야 하지만 악의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언의 진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왜곡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실수가 꼬투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2004년 제17대 총선 때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노인폄하발언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정동영 의장 답변 요지는 “정치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 … 20대 30대의 지금 결정이 미래를 결정 … 투표에 참여하는 게 자기의 이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답변하면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했던 겁니다.
자신의 미래를 60대 70대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20대 30대가 투표를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려는 뜻이었겠지만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고 … 집에서 쉬어도 좋다”는 발언은 명백히 잘못된 발언이었습니다. 언론은 이 발언에 ‘노인폄하발언’ 프레임을 씌웠고 노인폄하발언은 정동영 의장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진의가 왜곡되었건, 언론이 발언의 앞뒤를 악의적으로 잘랐건 “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는 발언은 공격의 빌미를 주었습니다. 국민의힘을 발끈하게 만든 “무당의 나라가 됐다”는 비유도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발언이겠지만 ‘무당의 나라’라는 표현에 상처받을 시민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대명입니다.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하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됩니다. 당원과 지지자들, 그리고 출범 채 석달도 안 된 새 정부에 실망하고 좌절한 시민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듣고 싶은 건 시시콜콜한 약속이 아닙니다. ‘시대정신’을 담아낼 가치를 듣고 싶을 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1600만표를 받고도 사상최소 득표율차로 졌지만, 이재명 후보가 시대정신을 담아낼 가치를 제시했다면 이겼을지도 모릅니다. 간발의 차로 당선된 윤석열 후보도, 막판에 물러난 안철수 후보도 시대정신을 담아낼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후보였기에 이 후보가 심판론의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방의 사또’였던 이재명 후보가 전국적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국무총리 국회의장 당 대표 등의 화려한 경력 없이도 집권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정치 자산 가운데 하나가 ‘사이다 발언’입니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보듯이 현실을 앞서가는 통찰력과 결정을 밀어붙이는 추진력, 현안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현안 하나하나에 대한 사이다발언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사이다발언이 필요합니다. ‘깐족댄다’는, ‘경박하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못하도록 정제된 표현,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정확한 비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불어민주당이 시대정신에 충실하게 환골탈태할 거라고 시민이 믿지 않겠습니까? 어대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