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나그네 43년 안병준⑤] “마음을 비운 것인가. 위대한 한 마리 독사 흑질백장이여”

구렁이과의 흑질백장. 변종이 아닌 구렁이과로 반초식 동물이다. 한달 중 보름은 식물성, 후반 보름은 동물성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질백장이 먹은 식물성은 산삼을 비롯해 더덕, 도라지, 작약, 부자, 다래, 산딸기 등 민약에서 주요 약재가 되는 약초들이다. 1970년대의 경우 백사는 연 1~2마리, 흑질백장은 4~5마리 정도가 잡혔는데 가격은 천차만별로 거래됐다고 한다. 1970년대 말 2m50cm의 흑질백장이 잡혀 800여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 당시 흑질백장은 수명 100년 이상의 해방 이후 최대 흑질백장이었다. <출처 ‘민약의 세계’ 홍진수 대산약촌 대표촌장>

[아시아엔=안병준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서울신문> 정치부장, <내일신문> 편집국장 등 역임] 노조로 돌아온 나는 여러 절차를 거쳐 비밀 회동 결과를 설명하고 추인을 받았다. 공식회의와 별도로 핵심인 K와 C를 만나 정부 인사로부터 받은 봉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둘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봉했다. 30만원이었다. 셋은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냈다. 풀칠을 하고, 다른 서류 봉투에 넣어 광화문우체국으로 가 등기속달로 부쳤다.

눈치를 챈 집행위원 권혁찬(權赫燦, 현 상생경제뉴스 대표) 기자가 나를 끈질기게 추적,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추적은 ‘위원장은 과연 요구사항을 관철할 것인가’를 살피고 지켜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와 나는 경제부 선후배로 돈독한 사이였다. 지금도 사이는 여전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동선(動線)’에 대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체협상은 진행됐으나 노노(勞勞) 갈등이 발생했다. 나의 비밀협상 때문이었다. 노조가 난리가 났다.

“안병준이는 사쿠라다!”
“안병준이가 청와대 모 인사로부터 3,000만원을 먹었다더라” 등.

‘3,000만원’은 내가 고교 친구의 빚보증 요청에 내 집을 당시 3,000만원에 은행 담보로 내주었던 사실에서 비롯됐다. 1983년쯤 첫 내 집을 장만할 때였다. 현재 그 친구는 나와 남남 사이가 돼 있다(속담이 된 옛 어른들의 “친구 사이에 돈거래 하면 친구 잃고 돈 잃는다”는 말씀은 진리였다).

이 일은 내가 노조 창립 훨씬 이전 편집국 근무 때 K와 C를 포함한 소위 ‘노조 핵심’이 된 2~3명한테만 말했던 사실이 있다. 모두 나를 떠나 무교동으로 가 ‘안병준을 안주로’ 술을 마셨다고 들었다. 다른 조합원들과 같은 심경이었을 터인 데 최병렬(崔秉烈) 사무장(수습 26기)만 남아서, 경과보고를 겸한 여러 장의 대자보를 함께 풀칠해주었다.

노조위원장 사표를 낸 다음 날, 나는 집사람과 함께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노학동 척산온천에 1주일을 머무르며 피폐해진 심신을 달랬다. 단체협상은 내가 제안했던 ‘노조의 양보안’대로 타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악산 자락에 머물며 시 두어 수를 읊었다. 그중의 한 작품으로 2014년 발간한 첫 시집 <무악재 부근>에 실었다.

안병준 시집 <무악재 부근>

흑질백장

설악 깊은 숲속의
이슬만 먹고
여유롭던 왕초 뱀
어느 날 땅꾼들에 잡히어
들판의 자유롭던
누런 똥개들과 만났다.

함께 들어갈 가마솥 물이
펄펄 끓고 있어도
바로 옆 철망 안에서
여유롭다
느긋한 몸짓이다.

마음을 비운 것인가.
위대한 한 마리 독사
흑질백장이여.         
(1988. 9. 4)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