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이나 지금이나···”함께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될 터인데”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내 스크랩엔 작가 김성동과 시인 이시영의 마음을 담은 정겨운 친필 편지가 가장 많다. 이시영은 예전 창비 주간으로 바쁠 때 주로 시집 발간이나 원고청탁 관련 편지가 많았다.
김성동은 시국에 대한 심정의 개탄, 혹은 나의 안부를 묻는 우정 어린 편지였다. 80년대는 내 몸의 건강이 몹시 나빠 병원에 오래 입원하거나 들락날락 통원치료를 계속하며 세월이 갔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가 보았다.
마당의 철쭉을 그윽히 보면서 너를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쓰다듬기도 하였다. 그때 마음이 약해져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얼굴은 병색으로 점점 시들어가고 마음도 자신감을 잃어 자포자기에 빠지던 시절, 하늘이 나를 가련히 여겨 다시 건져주시니 이날까지 새로 부여받은 목숨을 소중히 갈무리하며 시도 쓰고 책도 낸다.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 입고 퀭하게 누웠을 때 많은 지인들이 다녀갔다. 대개 마지막 작별인사의 심정이었으리라. 어떤 분은 와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고 어떤 분은 귀한 음식을 들고 왔다. 어떤 분은 와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꽃이 만발한 화분을 들고 왔다. 어떤 분은 병원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놓고갔다.
그때 병실에 와서 내 이마를 짚어보고 걱정 근심의 편지를 보낸 벗이 작가 김성동이다. 당신은 출생부터 유소년기 전반을 분단, 이념, 부모이별로 말미암아 가슴에 피멍든 그런 곤죽의 삶을 살아오셨음에도 이날까지 지치거나 꺾이지 않고 때로는 한 잔의 술로 비분강개하며 가슴 속 애끊는 사연을 장강대하로 풀어내는데 나는 고작 나를 짓누르는 삶의 업보와 제대로 한판 겨루어보지도 못하고 초췌한 몸으로 병실의 우울한 공기를 마시며 실낱 같은 명줄을 이어갔으니 이보다 더 참담한 지경이 어디 있었으랴?
김성동의 엽신 두 장을 올려본다.
東洵 仁兄
청정(淸淨)하던 仁兄의 글씨가
힘없이 흐트러진 것을 보니
仁兄의 병세를 보는 듯하여 마음 아프오.
단단히 몸조리를 해온 것으로 알았더니
이게 무슨 소식이오?
田(채린) 선생한테서 입원 소식을 듣고
이내 달려가고자 하였으나
나 또한 근력이 부실하여 머뭇거리던 차에
仁兄의 글월을 받게 되었구려.
며칠 안으로 한번 가리다.
힘을 내시오!
1986. 5. 10
正覺 합장
———————–
東洵 仁兄
환후(患候)는 어떠시오?
훌훌히 다녀온 뒤로 늘 마음만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집에서 정양을 하고 계신지?
그리고 상태는 어떠하신지?
출옥(出獄)한 송기원 형과는 술 한잔 나눴지요.
함께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될 터인데……
仁兄의 몸이 걱정이오.
하루속히 병석(病席)에서 해방되시기를
기원드리며.
1986. 6월 끝날
正覺 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