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외우 김성동, “천재 청년 그때 그 모습 함께 되찾세나”

요즘 김성동

벗을 못본 지가 20년도 넘었습니다.
최근 페북에 벗의 편지를 몇 번 올리다
벗이 왈칵 그리워졌습니다.
대구에서 충주까지 차를 몰아 178km,
그 먼 거리를 맹렬히 달려갔습니다.
어서 보고싶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청년 김성동

하지만 막상 대면한 벗은
너무 황폐해져서 예전의 벗이 아니었습니다.
실내에서 발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언어기능도 순조롭지 않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과 쓰레기만 가득 널려 있습니다.
악취도 나고 불결한 환경입니다.

소설문학 표지인물 김성동

지난날 1979년 초반,
소설 <만다라>로 세상의 큰 주목을 받았던 벗,
그렇게도 뛰어난 재능으로 총명하던
천재성을 뽐내던 청년이
어쩌다 이다지 참혹한 지경이 되었을까요?
지난해만 해도 장편 <국수(國手)>를 발간하며
건재를 과시하는 걸로만 여겼는데
그 멋있던 장발은 아주 파뿌리가 되었고
눈은 백내장이 심해 앞이 잘 안 보이고
벌벌 떠는 손으론 줄곧 소주병만 더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엔
적막과 공허만이 감돌았습니다.
나는 마주 앉아 피눈물이 났습니다.

초상화 속 김성동

처음엔 누구인지 알아보다가
나중엔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나를 만나는 게
두렵고 겁이 나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공연한 핑계가 분명합니다.

아, 김성동

이미 한병 반이나 마신 듯합니다.
부엌에 가보니 음식 조리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책상 위에도 집필의 자취가 없습니다.
오래 굶은 빈속에 들어간 소주가
벗을 수면 속으로 끌고 가
앉은 채로 오래 코를 골며 주무십니다.
나는 그저 망연자실 앉아있습니다.

김성동, 아 김성동. “이때의 김성동 함께 되찾아 나서보세”

이렇게 혼자 방치되어 있다가
무슨 참혹한 일을 겪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립 속에 종생을 할 위험이 있고 한참 뒤에
발견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느껴집니다.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구출해야 한다는
그런 애달픈 생각만 자꾸 했습니다.
곁에서 돌보는 도우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무런 도움도 못 드리고
그저 넋을 잃은 채 물끄러미 보다가 왔습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 날은 저물고
자꾸 눈물이 나서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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