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나가서 봅시다” 25년전 황석영의 옥중 연하엽서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작가 황석영 선생의 삶은 늘 풍파를 몰고 다니거나 풍파 속에 있다.

1943년 중국 장춘 출생으로 태어난 직후에 8.15해방을 맞고 분단 직전에 가족들과 38선을 넘어오게 된다. 초등 입학 직후에 6.25전쟁을 만났고 고등 입학하니 4.19민주혁명이 일어났다.

잇달아 5.16군사쿠데타를 겪었고 20대 초반, 군에 입대를 했는데 뜻밖에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제대하고 돌아오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휩쓸렸다.

이때 시위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이게 1차 징역, 소설 <장길산> 집필을 위해 광주에 갔다가 5.18광주민중항쟁을 겪게 된다.

장편을 완성해서 서울로 돌아온 직후 북한 방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평양에서는 김일성도 면담했고 그 때문에 서울행 귀국 길이 막히고 말았다.

이후 베이징을 갔다가 북경 천안문사태를 목격한다. 중국에 머물던 발길은 독일 베를린으로 향한다. 거기서 마침 베를린 장벽이 철폐되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다.

그의 떠돌이 삶은 미국 LA로 건너가는데 여기서 흑인폭동에 휘말리게 된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로 화해무드가 조성될 즈음 귀국을 결정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국가보안법 혐의로 즉시 체포되었고 곧장 감옥으로 직행하게 된다. 이 무렵 평양에서 만났던 김일성이 사망한다.

일정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영국 런던대 초청강의에 참석하는데 마침 런던폭탄테러가 발생한다. 이어서 파리로 이동했는데 여기서 파리 이민자 폭동 현장을 직접 목격한다.

작가가 파란만장을 몰고 다니는가?
파란만장이 작가를 따라 다니는가?
간데족족 시련과 환난이 끊임없이 동행한다.

오늘 올리는 이 편지는 작가 황석영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공주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감옥 안에서 쓴 특이한 편지다.

주소는 공주우체국 사서함 13호, 연하장 여백에 짧게 쓰셨다. 내가 보내드린 시집 <봄의 설법>과 김자야 에세이 <내 사랑 백석> 등을 받으시고 그 소감을 적은 감사 편지다.

단조롭고 고통스런 정황에서 쓴 ‘옥중편지’라 그 감회가 더욱 새롭다.

‘하여튼 나가서 봅시다’란 끝 대목에서 축약의 큰 울림이 느껴진다. ‘그 시골집에 나도 가보고 싶네’ 다음엔 ‘검열필’이란 청색 스탬프 도장도 찍혀있다. 시골집은 내가 살던 경산 용성면 고죽리 그 전형적 농가를 가리킨다.

황석영 선생과는 채광석 시인 장례 직후 현장에서 이애주, 김성동 등과 살며시 나와서 원경 스님을 따라 여주 신륵사 입구 술집에서 밤새 통음하던 아련한 기억의 실루엣이 남아 있다.

그 시골집에 나도 가보고 싶네.
시집도 반가웠고, 김자야 여사의
글도 가슴 저렸고, 하여튼 나가서
봅시다.

96년 1월 황 석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