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편지] 이동순이 이시영에게···”여전히 그립고 살뜰한 벗이건만”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참 다정했던 친구, 언제나 전화를 해도 푸근하고 은근하면서도 눅진하고도 듬직한 친구.
‘창비’가 공평동에 있을 때부터 마포 용강동 시절까지 충직하게 봉사하고 근무해서 부사장까지 승진했던 참으로 특별한 삶을 살아온 정겨운 친구,
1987년 한국 최초의 <백석시전집>이 발간되도록 가장 극진하게 뒷바라지를 해준 친구, 90년대 어느 날은 내 경산 고죽리 시골집에도 하루 자고 가서 그때 이른 아침에 들었던 새소리를 엽서에 적어 그대로 실감나게 전해준 친구, 또 그 감흥을 시작품으로 쓴 친구,
<만월>이라는 시집으로 보름달의 둥글고 환한 기운을 전국의 독자들에게 긍정적 메시지로 전해준 친구, 서울 가면 언제나 만나 이슥하도록 술잔과 정담을 나누던 친구,
술이 취하면 절친 송기원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빛 맞추며 고갯짓으로 박자도 맞추며 ‘해운대 엘레지’를 3절까지 구성지게 부르던 우리 옛 가요를 사랑하던 친구,
평생 겪어온 이야기를 산문체 시로 엮어서 조곤조곤 들려주던 친구, 내가 어떤 시작품을 기획할 때마다 힘과 격려를 담은 편지를 보내주던 친구,
문학과 민주주의의 최전방에서 늘 앞장서서 이끌고 주도하던 친구, 작가회의 이사장까지 지낸 친구, 여러 후배들에게 모범적 처신을 보여준 친구,
딸 민서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 기쁨을 몰래 고백하던 친구, 차고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속으론 은근한 정이 넘치던 친구,
내 과거시간 속에서 친구는 이토록 여전히 그립고 살뜰한 벗이건만, 언제부터인가 서로 어떤 소식도 나누지 않는 10년 세월이 껑충 지나도록 音信이 두절된 친구,
내 아이 결혼소식을 전한 편지를 반송 도장이 찍혀 되돌아오게 한 친구, 그렇게 된 까닭도 사연도 전혀 알지 못하는 너무도 알쏭달쏭한 친구,
나는 자주 생각하는데 본인은 나를 아주 잊은 친구, 평생 우정을 진득하게 나눠야 친구인데 그 한결 같지 않은 모든 이유가 혹시 내 탓이 아닌가 늘 자책하게 되는 언제나 마음 속에서 그립고 보고싶은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