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편지] ‘이가림’이 ‘이동순’에게 “따스한 체온의 사람들이 있는 한···.”

이가림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쓴 편지

죽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생애 단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 절차이다. 하지만 이것을 통과하기 위해선 이승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 지녔던 돈과 부동산과 지위, 명성까지도 홀가분하게 벗고 알몸으로 가야 한다.

떠나기 위해 염습을 하고 수의로 갈아입지만 그건 표피적 절차일 뿐이다. 아주 홀가분하게 눈을 감고 떠나간다. 그 가는 곳이 어디인가? 아무도 아는 이가 없고 초행길이다. 불가에서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복귀라 하지만 애당초 왔던 곳은 어디인가?

흙인가? 물인가? 아니면 공기인가? 바람인가? 구름인가?
그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지만 하여간 어떤 공간으로 결연히 떠나는 ‘장소의 변경’, ‘거처의 이동’인 것은 분명하다.

이승에서 애착을 갖고 사용하던 육신은 낡고 추레하고 다시는 재생이 불가능한 폐가와 같다. 그 폐가는 영혼이 떠나면서 급격히 부패하고 해체되며 붕괴로 이어진다. 한 채의 폐가가 무너지듯 영혼이 떠난 육신은 덧없이 소멸된다.
아, 홀가분해진 영혼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1943년에 태어나 2015년, 아주 먼 곳으로 미련없이 떠나버린 이가림 시인의 편지를 모처럼 꺼내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해보았다. 나는 이가림 시인과 밀접한 인간관계를 갖진 않았다. 하지만 문단 선후배로 같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여러 권 펴낸 동지적 공감과 유대감으로 언제 만나도 반갑고 흔쾌하고 푸근한 상호긍정, 상호수용이 있었다.

그는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전 숭전대학 교수로 여러 해 일하다가 인천 인하대 불문과로 옮겼다. 그 대학에선 동료교수였던 비평가 최원식과 친했다. 내가 어쩌다 최원식을 만나러 인천엘 가면 꼭 이가림 시인이 그날 저녁 동행했다.

술은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고 그저 밤이 깊도록 조곤조곤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나누는 정담을 즐겼다. 그런 만남도 그리 많지 않다. 옛 중국 싯구에 이런 글귀가 생각난다.

“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마음 맞는 친구와 술 마시면 일천 잔도 부족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반 마디도 많다.)

이가림 시인과는 서로 열린 관계였다. 그러니 만남의 횟수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1981년에 보내준 그의 편지다.

이가림 시인

李兄의 시집 <개밥풀>과 장시 ‘수몰민(水沒民)’을 대하고 믿음직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비록 시절이 ‘개들의 시절’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詩的 상상력은 결코 포기되거나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兄과 같은 따스한 체온의 사람들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할 것이고 詩 또한 영원할 것입니다. 정말 나는 희망처럼 믿습니다. 우선 소식이나 전하는 의미에서 글월 띄웁니다. 李兄의 詩的 투혼 더욱 활발히 살아나 만인의 심금 깊숙이 박힐 작품 많이 쓰길 빕니다. 그럼 만나서 일배할 때까지 몸 건강히 계시길~~

1981. 9. 2.

梧井골에서

李 嘉 林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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