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서의 하룻밤’ 인연 담은 전 국정원장의 손편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옛 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란 작은 단체가 하나 있다. 발족한 지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전국적 조직이고 등록회원은 100명 미만이다.
주로 하는 일은 우리 옛 가요가 얼마나 소중한 역사적 자료인가를 깨닫고 옛 가수들의 노래를 재음미하며 새로 발굴한 음원을 함께 감상하기도 한다.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의 경우는 해설이 붙은 10장 짜리 CD전집을 발간하였고 진방남, 김정구, 이부풍, 강석연, 이애리수 등은 한두 장 분량의 대표곡 선집으로 발간했다. 군국가요 선집도 여러 장 펴냈으며 탄생 100주년 되는 대중음악인의 대표곡 선집도 발간했다.
그 어디에서도 운영비 지원이 없이 오로지 순수한 회비와 찬조금으로 운영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이룬 성과도 적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모임은 뜸해졌다.
이 ‘유정천리’가 출범할 때 서울 경기고 동문들로 구성된 ‘문화문’이란 단체에서 어느 날 초청이 왔다. 거기 소속의 유재원, 정관용, 최용민, 박채근 등 몇몇 유명인사들과 지면이 있는 터라 그냥 즐기는 여흥자리로만 알았다. 경기도 양수리 어느 모텔을 통째 빌려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는 풍류 모꼬지였다.
나는 친구 정호승 시인과 같이 참석했다. 명사회자 정관용은 정호승의 교사시절 제자였다. 그날 가서 보니 초청목적이 밝혀졌다.
옛 가요 조직을 하나 만드는데 누구를 보스로 초빙할 것인가였고 내가 그 자리에 후보자로 불려온 것이다. 말하자면 회장 선출을 위한 면접고사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긴장은 전혀 없이 노래를 부르며 거의 밤을 새웠다. 그후 ‘유정천리’ 회장이 되어 장기집권(?) 중이다. 그런 면접을 두 차례나 했는데 두 번째 모임에는 특별한 분이 참석을 하셨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고영구 변호사가 오셨다. ‘문화문’ 모임의 상징적 좌장은 홍성우 변호사로 두 분이 함께 민변 시절 친구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서히 술잔이 오고 가며 여기저기서 노래가 터지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되자 자리를 정돈하고 고영구 변호사와 나의 노래대결 분위기로 바뀌었다. 고 변호사는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노래를 곧잘 부르셨다. 그냥 잘 부르는 게 아니라 이론을 가지셨는데 “옛 노래는 유성기 음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리는 가창이어야 하고 발음도 그 시대의 어법에 맞게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비가 내린다”가 아니고 “나린다”로 ‘하면’을 ‘하이면’으로 고풍한 발음법을 중시하며 불러야 고유의 제맛이 제대로 살아난다고 했다.
내 노래의 가창법에 대해서도 잘 부르긴 하는데 수정할 부분이 더러 있다며 일일이 그 대목을 고쳐주셨다. 나도 강호에 노래깨나 부르고 다녔는데 이런 고수를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앉음새를 겸손히 하며 고수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이렇게 무박 2일을 신바람나게 놀고 헤어졌다. 그 며칠 뒤 나는 가요사 관련 내 저서를 보내드렸고 고영구 변호사는 다정한 편지를 보내주셨다.
소탈하고 꾸밈새가 없으며 정겨움이 듬뿍 묻어나는 즐거운 편지였다. 그로부터 한참 못 뵈었는데 어느 덧 80대 중반이 되셨으리라. 건강은 여전하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