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퍼붓던 그날 대종사님 “상덕아 서둘지 마라”
[아시아엔=정상덕 원불교 교무] 8월 17일 새벽 기도를 마쳤다. 영산성지를 비추는 새벽 초승달이 아이 손톱처럼 아름답다.
오십일 넘도록 이어진 긴 여름 장마가 이제 끝이 났다. 영산성지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월 8일 새벽 6시 30분. 이날은 영산성지의 새로운 역사의 한 줄이 새겨질 날이다.
시간당 37mm의 장대비가 밤새 퍼붓더니 5만여 정관평 논과 보은강은 물론, 영산원 앞 도로까지 완전히 침수되었다.
산업부 주택과 귀한 쌀, 농기계들까지 폭우 피해를 보았다.
마을 어르신들 기억을 빌자면, 대종사님과 구인 선진들께서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처음 겪는 큰 홍수라고 한다.
8일 새벽 폭우 속, 대각전이 아닌 정관평으로 행선을 나갔다. 너른 논 한가운데 마주한 벼들은 장대비에도 여유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꼿꼿했다.
계속해서 번개가 내리치니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법신불 사은님께 ‘제가 전무 출신으로 살면서 벼락 맞을 짓은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것도 잠시, 쇠로 된 손전등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이 느껴져 서둘러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해 돌아왔다.
젖은 몸을 말리며 휴식을 취하던 중 엄청나게 요란한 빗소리에 황급히 방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숙소인 적공실 마루에 대종사님께서 앉아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눈을 의심한 것도 잠시. 하늘이 깨질 듯 치는 번개에 정신이 들어 신발을 꿰차고 정관평으로 달려가려는 나를 대종사님은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 등을 어루만지며 타이르듯 조용히 말씀하셨다.
“서두르지 마라.”
영산성지가 폭우로 잠기던 그날, 임께서 사용하시던 적공실을 찾으시어 비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사이로 정관평을 내려다보시던 소태산 대종사님. 그날 이후 10여일이 지났지만 적공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그 모습은 생생하다.
침수되던 그날, 찾아오신 뜻을 내 안에서 수없이 되새겨 본다.
걱정을 안심으로 돌려놓게 하셨고, 지금도 ‘서두르지 마라’시던 그 여운이 내 안에 맴돌고 있다.
그 당부는 천지가 하시는 일에 순응하며 사심을 내려놓고 진리의 힘으로 살라는 것이었다.
100년만의 장마를 축복 기회로 여는 건 우리들 몫
조급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풍요로움과 편리를 좇아 문명을 이뤘다고, 자연을 극복했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사실 천지로부터 받은 은혜의 원금도 갚지 못하고 오히려 빚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바람도 없이 오직 묵묵히 조화로운 천지에 보은하는 길은 무엇일까?
친환경(親環境)이 아니라 필환경(必環境)이어야 하고 인권(人權)을 넘어 일체생령권(一切生靈權)이어야 할 때다.
‘상덕아, 서두르지 마라’
내가 나에게 묻는다. 급하고 놀랄 일이 아니다. 일체생령 앞에 겸허히 멈춰야 할 시간이다.
나부터 필요 이상 돌아다니는 발걸음 멈추고, 인간 중심의 파괴와 개발을 참회하며 내려놓아야 할 때다.
정관평에 가득 찼던 물이 빠지고, 영산성지는 다시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여름꽃들로 가득하다.
100년 만의 장마를 축복의 기회로 여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