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의 평화일기] ‘환갑 마라토너’ 강명구의 자나깨나 꿈은 평화
[아시아엔=정상덕 원불교 교무] 마라톤에는 고통이 기본으로 뒤따른다. 그러나 고통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은 고통 속에서 승화된 최고의 환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미국 대륙횡단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 고통이 지나고 나면 찾아오는 잊을 수 없는 환희, 그것을 체험하러 홀연히 길을 나섰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난 2015년 미 대륙 5000km를 마라톤으로 횡단한 세계적인 마라토너 강명구 선수의 이야기다.
61세의 강 선수가 이번에는 지난 6월 6일 제주 강정마을을 출발해 부산-울산-경주-대구-성주를 달리고, 차로 광주로 이동해 전주-익산-논산-대전-청주-성남-광화문까지 날마다 약 30~40km씩 총 663km를 주파해 6월 24일 시청앞 광장에 도착했다.
고통을 이겨내고 평화의 씨앗을 전국에 뿌린 뒤 시민들에게 마라톤 대장정을 마쳤음을 알리고, 시민들이 손수 만들어준 월계관을 머리에 썼다.
우리는 그 긴 호흡의 발걸음을 ‘평화마라톤’이라 이름 붙였고, 그는 평화마라토너였다.
이번 마라톤의 목적은 촛불항쟁 결과 탄생한 새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길 기원하며, 한미정상회담에서 사드배치 철회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촉구하고자 했다. 그는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쓴 어깨띠를 두르고 달렸다. 평화에 대한 분명한 호소를 담았다.
평화 마라토너의 상징인 강명구 선수를 옆에서 지켜보며 마라토너 두 분이 떠올랐다.
한 사람은 ‘맨발의 아베베’다.
“나는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보다 내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끝까지 달렸을 때 승리로 연결됐다.”
1960년 9월 10일 로마올림픽에서 우승한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는 불굴의 정신을 불태운 영웅이었다. 그는 로마올림픽에서 두 가지 벽을 깼다. 마라톤에서 인간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2시간20분의 벽을 깨고 2시간15분16초의 기록을 세웠고, ‘검은 대륙’의 선수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는 벽을 깼다. 사람들은 거기에다 그가 맨발로 42.195㎞를 달려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 경악했다.
또 한 사람은 손기정 선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금메달 리스트’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어 우승했지만, 마라톤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일장기를 외면하고 우승 기념품으로 받은 월계수로 가슴팍의 일본 국기를 가렸던 ‘끝나지 않은 마라토너’였다.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라는 아베베를 통해 인간 승리를 배우고, 손기정 선수를 통해 불굴의 의지를 배웠다면, 이제 강명구 선수를 통해 자유와 정의를 넘어 평화를 배우고 있다.
강명구 선수의 꿈은 오는 9월에 헤이그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평화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다. 15개국 1만6000km를 1년2개월에 걸쳐 뛰는 마라톤으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한반도평화를 기원하며 도전할 예정이다. 마지막 길은 평양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수의 희망은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고단한 고통을 넘어 낮은 모습으로 임하는 겸손 때문이고, 둘은 스스로가 ‘헤이그 평화대사’라고 하듯이, 뛰면 뛸수록 평화의 동력이 살아나 ‘스스로 평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뜀걸음에는 평화로운 대화가 있고, 아름다운 만남이 있고, 화합이 답이라는 온전한 정신이 있다. 더불어 “무기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고, 오직 평화로만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역사의 증명이 있다. 이미 평화인 그를 떠올리는 이 순간, 나도 이미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