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의 평화일기] 백기 게양한 교도소를 상상한다
[아시아엔=정상덕 원불교 교무] ‘백기를 들고 투항하였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항복한다는 뜻이다.
백기 사용은 3세기경부터 유래된 관습이라고 한다. 그 시대에는 염색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천이 흰색 천이었고,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난무하는 전투현장에서 중대한 신호를 하기에는 가장 구분이 되는 것이 흰색이어서 백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는 전쟁을 하다 항복할 때 백기 드는 것을 공인된 규칙으로 정하게 된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들 끼리 전쟁을 할 때 항복의 여부를 알 수 있는 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싱 등 운동 경기에서 시합을 포기하는 신호로 흰 수건을 던진다.
이처럼 흰색은 항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긍정의 의미를 훨씬 더 많이 지니고 있다. 평화와 순수, 순결 등이 그것이다. 교도소를 나오면 ‘앞으로는 거짓 없이 깨끗하게 살아라’는 뜻에서 유래되어 흰 두부를 먹기도 한다.
덴마크에서는 교도소 수감자가 없을 때에는 백기(白旗)를 게양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교도소에도 언젠가 백기를 게양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한편 우리나라 경찰청은 2000년 1월부터 일선 경찰서 유치장에 피의자가 없을 경우, 편안한 치안상태를 홍보하기 위해 ‘백기(白旗)’게양 제도를 도입하였고, 2015년 7월 여수경찰서 등에서 실행되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00구치소에서 원불교 법회가 있는 날이다. 교정교화의 산증인인 강해윤 교무와 정성의 표본인 교화위원들 덕분에 설교할 기회가 주어졌다. 재소자들에게 설교하면서, 좋은 세상이 오고 있으니 언제나 건강하고 희망을 함께 꿈꾸자고 하는 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돌아오는 길 남태령 고개길에 잠시 차를 멈추고 되돌아보며 다시 기도하였다. 전주지역에서 8년 동안 교도소와 소년원 강의를 하며 만났던 제자들 생각에 지그시 눈이 감긴다. 그들을 교화 대상자로 보고 처음에는 가르치려들면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빵을 주고, 호흡을 지도해줬지만 늘 안타까웠다. 어느 날부터 개개인 면담을 통해 아이들의 아픔의 근본 원인을 깊이 알 수 있었다.
가족의 손길이 없었던 아이들의 소원은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엄마’ 하고 그 품에 안겨보는 것이었다. 그 따뜻한 사랑은 외로움을 정겨움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가난을 나눔으로 변하게 하는 신기함이 있다. 소년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과 관심 등 꼭 필요한 부분이 빠져있었다. 그 빈 자리를 국가나 사회가 대신 엄마 아빠와 가족이 되어주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퇴학을 시키고 교도소로 밀어넣고 높은 담장을 쌓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어린 님들과 만남은 종교인으로 내 삶에 늘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었고 더불어 나를 인권운동가로 변화시키는 에너지였다.
소년원의 진정한 백기 게양은 세상에 소외받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은혜와 자비로움으로 채우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며 백기 게양의 상상력이 이루어지도록 실지기도로 희망을 건다.
“~지금은 대개 사람이 죄 짓기를 좋아하며, 죄 다스리는 감옥이 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국한을 정하여 울과 담을 쌓아서 서로 방어에 전력하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죄 짓기를 싫어할 것이며, 국한을 터서 서로 융통하리라~” 전망품 20장에서
2017년 6월 9일 정 상 덕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