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고동락한 절친과 헤어졌다”
[아시아엔=정상덕 원불교 교무] 50여년간 동고동락한 절친이 있다. 그 친구는 열 살 전후에 만났을 때부터 첫눈에 반한 텔레비전이다.
줄여서 TV라고 부르는 텔레비전(Television)은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tele’와 라틴어로 ‘본다’를 뜻하는 ‘vision’이 합쳐진 단어다.
전기신호가 닿는 곳이면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 텔레비전이다. 셀레늄의 광전효과를 이용해 이러한 신호를 멀리까지 전달하는 기술로 열 살 무렵의 꼬마를 매료시킨 친구였다.
나를 포함한 동네 꼬마들은 저녁이면 언덕 위 교장 선생님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러 어김없이 모였다. 그렇게 텔레비전은 라면과 함께 오랜 세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텔레비전의 크기와 종류는 변해가며 재미와 유익한 정보의 전령사로 여러 번의 이사에도 항상 함께했다.
최근에 그런 50년 절친과 치열하지만 멋진 결별을 했다.
신축년을 맞아 새롭게 마음을 세우고자 익숙한 것과의 결별로 그 시작점을 그었다.
하나는 내 마음에 무심코 일어나는 묵은 습관과 싸움이다.
어느 날 방에 들어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손도 씻지 않고 무려 1시간 이상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나에게 물었다.
‘지금 심심해서 틀었어요?’
‘무료함을 언제까지 텔레비전에서 찾을 건가요?’
‘물질인 텔레비전의 개벽처럼 당신의 정신개벽은 안녕한가요?’
그렇게 중얼거리듯 오래된 마음 거울을 작동시키며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텔레비전을 켜고 있는 나를 다시 발견했다.
그리고 <인간극장> 정도는 좋은 프로그램이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합리화시켰다.
10분쯤 지나 마음을 바라보며 또 물었다. ‘코로나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번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언제 공부할 건가요?’
‘소태산 대종사님이 응접실로 사용하던 적공실(積功室)이라는 이름에 누를 끼치진 않았나요?’
원불교 ‘정전’ 학습 공책을 만들고 있는 요즘, 이렇게 부족한 실력으로 어찌 교무생활 30년을 했을까 싶어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고 부끄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니 벼락처럼 번뇌를 끊게 되었다.
또 하나는, 영산 성지 필자 숙소인 적공실에서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사물인 텔레비전을 치우고 오롯한 법당 겸 응접실을 만들고 싶었다.
교무로 생활하면서 소박하고 정갈한 공간을 지향하고 싶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 좋다.
그렇게 익숙하고 오래된 절친 텔레비전과 결별을 하고 필요한 곳에 드리고, 보름 동안 내 마음 작용을 살펴보았다. 혹 텔레비전을 치우고 다른 정보 찾기로 정신을 소비하고 있는지 조사해봤다.
좌선과 기도에 더욱 시간과 정성을 쏟고 성지 이야기와 수행의 시간을 기록하는 글쓰기에 더욱 집중한다. 텔레비전이 내뿜는 광전효과를 끄고, 이제 자심 미타(自心彌陀)의 지혜 광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일에 더 온전히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