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원자력잠수함 협상 ‘전쟁’ 어떻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미 원자력 협정이 처음 시작한 것은 1956년이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의 용도와 의의를 알았다.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원자력이 무궁무진한 연료가 될 수 있다는 데 착안하였다.
이를 위해 1959년에 원자력연구소를 짓고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설치하여 인재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국민은 자주국방에 있어 박정희 대통령만 주로 생각하나, 원자력에 관한 한 이승만은 박정희의 선구자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고리 원자로를 완성시켜 원전시대를 열었다. 1972년 11월 한미 간에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1974년 5월에는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한국과 미국 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핵심은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한국이 핵연료의 농축이나 재처리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개정 이후에도 한미 원자력협정은 불평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핵 연구에 있어 여전히 미국의 통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적 핵 활동에 대한 자주권을 보장받기 위해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있어 왔다.
양국은 2010년부터 개정 협상을 시작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2015년 6월 협정문에 서명하고 11월 새로운 한미 원자력 협정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이것이 지금 적용되는 한미 원자력 협정이다. 새로운 원자력 협정은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원전수출을 중점으로 하며,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를 하지 못하게 규정했던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로써 평화적 목적의 자율적인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등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1972년 협정에서 규정한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이라는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다.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위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 족쇄는 이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에서 도입한 자재와 기술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충실하게 지켜왔다.
핵무기에 대해서는 NPT에 가입하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이제 핵무기와, 북한 핵무기를 탐지 요격하기 위해 필요한 잠수함에 설치될 원자로를 같은 차원의 군사용으로 볼 것인가는 한국과 미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
한미 간의 모든 협상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원자력잠수함을 만들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수함에 원자로를 장치한 원자력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방위산업 기술의 총화다. 외교부, 국방부, 산자부의 두뇌들이 동원되어 미국 정부 담당자를 설득해야 한다. 국내 전문가와 언론도 힘을 합쳐야 된다.
용산미군기지 이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여 ‘남의 나라 수도 한가운데 병영이 있는 것은 무리한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려 이루어진 것이다. 미사일 협상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최대한 유리하게 해주라고 해서 된 것이다.
이제부터 고도의 대미 원자력잠수함 협상 전쟁을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