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시 육사 동창회장 11기 강재륜, 전·노와 달리 군인 대신 철학자의 삶

1955년 10월 4일 서울 태릉 화랑대에서 열린 육사11기 졸업·임관식에서 생도들이 분열하고 있다. 강재륜도 이 대열에 있었다. 육사는 1946년 5월 1일 태릉에서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교한 후 6·25전쟁으로 임시 휴교한 후 51년 10월 31일 진해에서 4년제 정규사관학교로 재개교했다. 이후 이날 첫 졸업식을 가졌다. <사진 국방일보>

5.16 혁명의 성공에는 5월 18일 육사 생도의 혁명지지 행진이 결정적이었다. 사관생도를 쿠데타에 끌어들인다는 발상은 안 된다. 병력을 끌고 육사에 들어온 생도대 부대장 박창암은 생도들을 겁박했다. 생도들은 결정을 못하고 동창회에 여부를 물었다. 동창회장이 강재륜이었다.

강재륜은 제주도 출신으로 1952년 4년제 육사가 개교하자 1기(후에 11기가 됨)로 입교하였다. 그는 육사 졸업 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교관으로 근무하며 많은 후배들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강재륜은 육사를 그냥 ‘육사’라 부르지 않고 꼭 ‘육군사관학교’라 불렀다. 모교에 대한 그의 사랑과 자부심이 묻어 있는 일화다.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체육부장관 임명장을 받고 있는 같은 11기 노태우. 이들은 강재륜의 육사 11기 동기다. 

철학자로서 강재륜이 존중했던 학자는 박종홍, 박홍구, 조가경 세 분이었다. 박종홍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철학계의 어른이었다. 박홍구는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 불어를 넘나들며 아리스토텔레스, 베르그송, 라이프니츠를 원어로 강독하는 향연을 베풀었다. 조가경은 독일에서 더욱 알아주는 세계적인 현상학자였다.

이분들에 대한 강재륜의 존경은 철학에 대한 그의 이해와 품격을 보여준다. 강재륜의 전공은 독일 관념론의 최고봉인 헤겔이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어 헤겔로 모아진다. 1988년 박사학위 논문은 「변증법적 유물론」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저희들이 어떻게 …’하며 손도 대지 않았다.

강재륜을 육사에 그대로 있게 하였다가는 위험하다고 본 하나회는 보안사령관 김재규를 시켜 육사에서 몰아내었다. 강재륜의 형 강재언이 일본에서 한국사상사 교수로 있는데, 조총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모략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물러난 강재륜은 중알일보 홍진기에 발탁되어 동서문제연구소에 재직하였다. 이 연구소에는 신상초, 황성모 등 저명한 지성인들이 모여 있었다. 당대 최고급 학자였으나 정권에 의해 박해받고 있던 인재들이었다.

자신이 경성제대를 나와 고등관을 지냈고, 자유당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을 지내다가 4월혁명 후 영어생활도 한 홍진기가 역경에 처한 이들을 알아보고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강재륜은 정치권으로 변신한 동기들과 달리 세간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편저한 <이데올로기 논사> 표지

강재륜은 이후에 동국대에 가서 국민윤리과를 만들고 주임교수가 되었다. 국민윤리과는 10월유신 후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립시키기 위한 도구적 목적으로 생겨났는데 강재륜은 윤리학의 정통과 핵심을 가르치는 학과로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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