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국경 난투극과 미중 무역분쟁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16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들고 중국과의 국경충돌로 인도 군인들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과 인도가 충돌했다. 인구는 인도 13억, 중국은 14억명이다. 핵무기는 중국이 3위, 인도는 6위다. 인도와 중국은 이번 충돌에서 총을 쓰지 않고 돌과 도끼로 싸웠다고 한다. 중국은 칼날이 둥근 창을 내오면서 관우의 청룡 언월도(偃月刀)라고 한다. 21세기에 희한한 재래식 비핵 전투다.

인도와 중국의 분쟁 이전에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도 해결되기 어렵다.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 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쟁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다. 파키스탄은 다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뉘어졌는데, 동파키스탄은 뒤에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방글라데시는 지구상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온다. 연간 23000mm, 즉 23m가 온 적도 있다. 여기에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냉전시대 인도의 네루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더불어 비동맹의 맹주였다.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동에서 아시아 아프리카의 29개국이 모여 중공의 주은래와 함께 비동맹을 표방하는 반둥선언을 했다. 주은래 외교의 꽃이었다.

그러나 1961년 중국은 인도를 침공했다. 소규모 국경분쟁이었지만 인도는 패배했다. 1969년 다만스키 분쟁에서 중국은 소련군에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1939년 돌격 위주의 관동군이 기계화된 소련군에 참패한 노몬한 전투의 재판이었다. 지금의 인도는 과거의 중공, 일본과 같은 형편인 것 같다.

미국은 반(反)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위해 미국, 일본, 호주의 3각 벨트에 인도를 연결하고 이를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확장하려 한다. 미국과 사실상 동맹관계를 맺은 인도는 중국에 대항할 수 있다. 미국은 나아가 대만과의 연대도 강화하기 위해 1972년 ‘중국은 하나’라는 상해 공동성명을 파기하려 한다. 중국으로서는 국가의 핵심이익이 위협받는 절박한 위기다.

중국은 홍콩을 중국의 영토로 공고히 하려 하는데 한국의 6.10항쟁과 같은 격렬한 홍콩인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시진핑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원로들로부터 2선 후퇴를 요구 받았다는 설이 돌고 있다. 등소평은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유훈이었다.

시진핑은 2050년까지 도광양회를 유지한다고 하면서 결불당두 유소작위(決不當頭 有所作爲)라고 해서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나 해야 할 일은 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신저 이래로 중국을 너무 키워주었다는 후회가 트럼프만이 아니라 미국 국민 일반에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무역 역조 개선과 함께 중국 유학생을 쫓아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정서가 이렇게 악화된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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