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윤관 동북9성과 21세기 중국의 ‘동북공정’

윤관 대원수 동상, 서울 국립의료원 인근 훈련원터에 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서울 도심에서 ‘윤관 대원수 상’을 보았다. 고려에 대원수라는 관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천황이 최고사령관이라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대원수 폐하’를 사용하였으나 상징일 뿐이었다.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대원수로 부르고 있다. 김정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즉 국가원수이고, 김을설, 조명록 등은 조선인민군 원수이다. 이는 나치 독일을 흉내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괴링을 국가원수, 룬트슈테트 등을 야전군 원수로 불렀다.

윤관은 문신이었는데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동시에 군인이었다. 조선에서 김종서는 좌의정까지 올랐는데, 북진을 개척한 군인이다. 우리에게는 김종서 ‘장군’이 익숙하다. 국초의 세종 조에는 이런 일이 가능했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급제하여 올라간 군인이었다.

류성룡이 임진왜란 수행을 지휘한 도체찰사였지만 류성룡 ‘장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도원수는 조선에서 Commander-in-Chief라는 뜻으로 임시적으로 쓰였지만 대원수는 없었다.

윤관이 여진 정벌을 위해 조직한 별무반은 17만 대군이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隋 침략을 막아내던 때에나 생각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고려시대 윤관이 정벌한 동북9성

당시 인구를 생각하면 거국적 동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관은 여진족을 토벌하고 동북에 함주, 복주, 길주, 공험진 등 9성을 쌓았으나 여진족이 자주 침범하는 등 부담이 많아 여진족에 돌려주고 말았다. 그러나 윤관의 동북 개척은 조선에서 세종의 4군6진을 개척하는 기반이 되었다.

윤관 대원수상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각종 사회단체가 기금을 내고 파평윤씨가 종친회에서 더하여 조선시대 5군영의 하나인 훈련원 자리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노산 이은상이 썼다. 국가 차원에서 건립된 것이며 북방개척의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

‘윤관 대원수상’은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로서 북진개척의 기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한중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우리의 자세를 가르친다.

윤관이 9성을 개척하고 공험진에 선춘령 비를 세웠는데 중국인이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네 자를 없애버렸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온다. 영토문제는 간단치 않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꾀하고 있는 마당에 남북의 사학자와 국제정치학자는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과 북이 잠시 냉각된 분위기에 놓여있지만 남북 학자 사이에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하겠다.

‘윤관 대원수상’을 통하여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라는 의식에 계속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자손들에 기록을 남기도록 해야 한다. 국토를 다시 찾는 일과,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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