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기부천사 박명윤씨 “매달 연금 쪼개 저축, 큰돈은 아니지만”
[아시아엔=나경태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결혼 50주년을 맞는 해, 우리 부부의 금혼식(金婚式)을 총동창회 차원에서 축복해주시는 것 같아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동문인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모교와 총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서울대 동문들에게 수여하는 시상 가운데 가장 영광스런 상으로 꼽히는 2020년(제22회) ‘관악대상’ 수상자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박명윤(보건대학원 74학번)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은 기부할 돈을 미리 떼어놓고 생활하는 ‘기부천사’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 것도, 자기 사업을 크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매달 연금을 쪼개 저축하여 기부금을 마련한다.
1999년 환갑 때 1억원, 2009년 고희 때 다시 1억원을 기부한 그는 2019년 팔순에 또 다시 1억원을 더해 총 3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3월 23일 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자택에서 박명윤 이사장을 만났다.
“지금도 매달 100만원을 떼어서 1년에 1200만원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환갑 때 기부한 1억원 중 5000만원을 서울대총동창회에 기탁해 ‘박명윤·이행자 특지장학회’를 설립했지요. 이후 5000만원을 보태 총 1억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했고요. 지난 20년 동안 우리 부부의 장학금을 받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박사학위 과정 학생이 120명이 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서울대 교수가 됐고요. 졸업한 후배들이 논문과 함께 감사편지를 보내올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기부는 쓰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박 이사장의 지론. 사회로부터 별 혜택을 받지 못한 시장 할머니들도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사회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서울대 동문들이 기부를 등한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도층 인사들이 마음먹고 절약하면 10년에 1억원 정도는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를 증명한 셈이죠. 매년 회갑과 고희를 맞는 50만명 중 1000명만 1억원씩 기부해도 우리 사회가 훨씬 밝고 따뜻해질 겁니다.”
박 이사장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그의 사회활동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1965년부터 25년 동안 유니세프(UNICEF)에서 근무할 땐 우리나라에 대한 보건 및 영양 사업 지원을 담당했으며, 19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되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을 땐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대한 구호 모금 사업에 앞장섰다.
재직 당시 보건의료·식품영양·아동청소년 문제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 100회 이상 출연했으며, 신문·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대학에 출강했다. 소소한 부수입 역시 기부한 것은 물론이다. 서울대동창회 장학기금뿐 아니라, 아동복지기금·청소년육성기금·평화와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의료선교기금 등 여러 단체의 활동에 힘을 보탰다.
“1994년 10월 한국청소년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할 때 EBS 라디오 프로그램 ‘명사와의 대담’에 출연했어요.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의 계획을 몇 가지 얘기하면서 돈을 모아 장학금을 내고 싶다고 말했죠. 그땐 가볍게 꺼낸 말이었고, 어긴다고 누가 따지러 올 것도 아니었는데, 꺼내 놓고 보니 간절히 지키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1995년 1월부터 하루 5000원 용돈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가며 5년간 1억원을 모아 장학금 등에 기부했습니다.”
박 이사장의 기부 업적엔 부인 이행자씨의 격려와 응원이 빠질 수 없다. 기부금 떼고 남은 수입으로 살림하기가 여간 빠듯하지 않을 터. 부인이 약국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보태지 않았다면 박 이사장의 기부 의지는 꺾였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총동창회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달랐던 박 이사장은 2000년부터 15년 동안 재단법인 관악회 이사로 봉사했으며, 80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국파인트리클럽(PTC) 총재,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상임고문, <아시아엔> 논설위원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후엔 연세대 의과대학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기로 부부가 함께 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