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로 한국 ‘식량대란’ 맞을 수도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인류 역사의 분기점으로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와 AD(Anno Domini, 그리스도의 해)가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세계역사는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코로나사태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장기화하면서 ‘식량 대란’이 촉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사람은 물론 식량까지 국경을 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곡물수출을 금지하거나 수량을 축소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곡물 수송과 가축 사육 등에서 큰 도전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 중국 환구망]
인도와 태국에 이은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3월 24일부터 쌀 수출을 중단했으며, 캄보디아도 4월 5일부터 쌀 수출을 중단했다. 베트남은 최근 쌀 수출을 재개했지만 수출량 조절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러시아는 3월 20일부터 밀과 쌀, 보리 등 모든 곡물에 대한 수출을 막았고, 세르비아와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등도 주요 작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글로벌 곡물 수출국들이 수출 제한 혹은 중단에 나선 것은 자국 내에서 벌어진 사재기와 곡물가격 상승 우려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4월 2일 국제 쌀 가격 기준인 ‘태국 백미(白米)’가 1톤당 560-570달러에 거래되면서, 2013년 4월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래학자들도 조만간 세계적 식량대란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식량대란이 닥쳤을 때 가장 곤혹스러워할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식량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쌀과 달걀을 빼곤 거의 모든 식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먹고 있다. 이에 식량안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보리·콩 등의 식량자급률은 2018년 기준 46.7%이며, 가축 사료용까지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1.7%에 불과하다. 식량자급률 품목에는 채소류·과일류·육류 등도 있다. 식량자급률은 1970년대 80%대를 유지했지만 1990년대 농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34%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5년간은 50% 전후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의 자급률은 2018년 기준 97.3%이지만, 자급률이 높은 이유에는 매년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요인도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70년 136.4kg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하여 2019년에는 59.2kg으로 전년보다 3.0%(1.8kg) 줄었다. 이는 하루 쌀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162.1g 수준으로 밥 한 공기 반 정도를 먹으며, 간편식이나 빵·과자 등 식사 대용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늘면서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18년 기준 보리쌀 자급률은 32.6%, 콩 25.4%, 옥수수 3.3%, 밀 1.2% 등이다. 사료용을 더한 곡물 자급률은 콩은 6.3%, 밀과 옥수수는 각각 0.7%에 불과하다.

또한 경지면적도 해마다 줄어 1970년 전체 국토의 23.3% 수준에서 2016년엔 16.4%로 감소했다. 국민 1인당 경지면적도 0.04ha로 세계평균(0.24ha)에 비하면 매우 협소하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등으로 국제 곡물생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식량대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의 항구가 닫혀 발생하는 식량전쟁의 영향은 수입 곡물을 이용한 가공식품에 나타날 수 있다. 즉 수입 곡물로 만드는 라면·과자 등 가공품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06-2008년 국제곡물가격 급등으로 2008년 수입 곡물을 사용한 제품의 국내 물가가 2000년에 견줘 식품은 70%, 사료값은 45%나 폭등했다.

2000년대 들어 2006-2008년과 2010-2011년 두번의 곡물파동을 겪으면서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급할 때만 대책을 찾다가 상황이 사그라지면 유야무야하는 게 그간 우리의 식량안보 수준이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식량공급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이에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정책이 탈바꿈돼야 한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이란 대외 의존적인 곡물을 수입 방식에서 벗어나 민관(民官)이 합동으로 해외곡물 유통사업에 진출하여 일정 물량을 독자적으로 들여오는 체계를 의미한다. 포스코(POSCO)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9월 세계 5대 곡물수출국인 우크라이나(Ukraine)의 흑해(黑海) 미콜라이프항에 연간 250만톤 규모의 곡물 수출터미널을 준공했다. 이 곡물터미널을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1992년에 우크라이나와 수교했으며, 최근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 진단키트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사람은 ‘배고픔’을 가장 두려워한다. ‘보릿고개’란 말이 있었다. 보릿고개란 농촌에서 하곡(夏穀)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는 4-5월의 춘궁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와 경제개발로 사라졌다. 한편 북한은 아직도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1961년 초 파인트리클럽 회장으로 선임된 후 클럽 회원들과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보릿고개’에 직면한 농촌의 절량농가(絶糧農家)를 돕기 위하여 모금활동을 했다. 클럽 회원들의 성금을 위시하여 가두모금도 실시했으며, 당시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위치) 스카이라운지 등도 방문하여 모금을 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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