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식량위기’···농업생산 비상

코로나 이후 여러 징후 가운데 세계적인 식량 부족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속 사막메뚜기떼는 케냐, 남수단,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국가뿐만 아니라 중동의 이란, 예멘까지 습격할 것으로 우려된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코로나19 사태 이후 즉, AC(After Corona)에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지는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 세계 석학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이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는 성곽도시의 부활을 촉발했으며, 세계질서를 바꿀 것”이라고 진단한다.

키신저는 코로나19 확산에 자국 중심적인 대응책을 내놓으며 각자도생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번 코로나 위기를 국가 단위에서 대응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국경을 인식하지 않으므로 세계적인 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보건 위기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정치, 경제의 격변은 세대에 걸쳐 이어질 수 있다.

UN세계식량계획은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이 빈곤 국가들의 경제·식량안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한 ‘코로나감염증: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칠 잠재적 영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위기국가에는 아프리카 및 중동 33개국을 위시하여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10개국, 남미 6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49개국에선 약 2억1200만명이 고질적인 식량부족을 겪고 있으며, 그 가운데 9500만명은 극심한 식량부족 상태에 있다. 북한은 주민 1220만명이 식량 미확보 상태에 있다. 북한의 상황은 식량 미확보 대상으로 꼽힌 49개국 중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에 이어 4번째로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코로나19가 농사철을 앞둔 아시아 일부 국가의 농업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식량가격 폭등이 저소득 국가에 파괴적이며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농식품의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체이스 소바 공공정책관이 분석한 주요 위협은 ▲빈곤하고 열악한 보건 인프라를 지닌 국가에 큰 위협 ▲식량공급 사슬 내 혼란, 식량부족, 식량가격 상승을 야기 ▲세계 경제 침체로 극심한 빈곤과 기아 악화 등이다. 그는 2014년 에볼라 감염증이 발생했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식품가격이 급등한 사례를 들면서 식량 수요를 수입 식품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은 국경 봉쇄로 위험에 직면하고 있으며, 농민들은 비료 등의 공급 사슬 붕괴로 농지를 휴한지로 두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UN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3월말 동아프리카에서 내린 폭우로 5월에 사막메뚜기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새로 출현하는 사막메뚜기떼는 지난해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사막메뚜기떼보다 규모가 많게는 20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메뚜기떼는 케냐, 남수단,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국가뿐만 아니라 중동의 이란, 예멘까지 습격할 것으로 보인다.

사막메뚜기는 가장 파괴적인 이동성해충으로 꼽힌다. 사막메뚜기떼는 메뚜기 4000만-8000만 마리로 이뤄져 있으며, 하루 자기 몸무게의 곱절에 달하는 농작물을 먹는다. 이에 메뚜기 떼 1톤이 하루에 사람 2500명분 식량을 없앤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남수단, 우간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6개국 주민 약 2000만명이 사막메뚜기로 식량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로 국가간 인력과 물자 이동이 제한되면서 사막메뚜기를 방제(防除)하는 데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즉, 사막메뚜기 방제에 필요한 동력분무기와 살충제는 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여오는데 코로나 사태로 정상적인 수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AC) 시대에 많은 나라에서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 곡물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국내 곡물 생산량이 450만톤 수준에 불과해 매년 1600만톤을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18년 기준 21.7%로 사료용 포함 ‘곡물자급 최하위 국가’에 속하므로 식량안보가 중요하다. 이에 정부는 국산 쌀 100만톤을 비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는 전국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국가적 재난 상황을 대비해 국내산 쌀 재고를 100만t으로 유지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이 이른바 ‘곡물 쇄국정책’을 펼치는 상황과 맞물려 주목되는 주장이다.

미곡종합처리장이란 벼를 수확한 후 건조, 저장, 도정, 검사, 판매 등의 모든 제반과정을 개별농가 단위가 아닌 대단위 자동화 과정으로 일괄 처리하는 시설을 말한다.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회장 문병완 전남보성농협 조합장)는 최근 서울 농협중앙회에서 개최된 ‘2020년 제1차 운영위원회’에서 코로나19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을 대비해 정부 비축 규모를 현재 수준에서 28만t 이상 추가하여 100만톤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정부의 쌀 비축규모는 72만톤 수준으로 이는 연간 소비량의 17-18%를 비축하는 게 적절하다는 UN식량농업기구의 권고를 반영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매년 가을 적정 비축규모의 절반 수준인 36만톤을 ‘공공비축미’로 구매하여, 2년간 비축한 뒤 방출하고 있다. 하지만 협의회는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 그리고 2019-20년 코로나19 등 국가적 재난의 발생주기가 점차 짧아짐에 따라 현재와 같은 비축규모로는 식량안보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앤컴퍼니의 ‘코로나 사태 이후 아시아 식품 소매시장의 재해석’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태국,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7개국 소비자 5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소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계기로 국산·친환경 식품을 더욱 선호하게 됐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소비자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 브랜드보다 국산에 더 강한 선호를 보였다. 이는 자국산 식품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외국산 식료품을 구매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고, 나머지 83%는 외국산 식료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특히 7개국 전체 응답자의 63%는 코로나 사태 종식 이후에도 친환경 식품을 사고 싶다고 답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는 생활 습관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대비 범정부 TF’를 구성하고 4월 9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 농식품부는 해당 태스크포스에서 경제·산업분과에 포함됐다. 농업계 안팎에서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코로나19 대응반’을 구성하여 활동에 들어갔다.

대응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농식품 분야의 단기적 현안과 AC(코로나 이후) 다가올 중장기적 농업·농촌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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