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속 팔순 노인의 ‘일상의 기적’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몇년 전, 한 도반(道伴)이 폐(肺)가 굳어지는 병으로 열반(涅槃)에 들었다. 그분이 명(命)이 다하기 한달 전쯤 전화가 왔다. “형님! 병원에서 제게 8천만원만 들이면 폐를 바꿔준다고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래? 아우님 생각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저는 이생에서 할 일은 거의 다한 것 같은데 그냥 가는 것이 좋겠어요.” “………!”
2011년 작고한 박완서 작가의 글에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이 있다. 그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원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든 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 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원을 내야 한다니 눈, 코, 입 다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공기를 공짜로 마시고 있다면 하루에 860만원씩 버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51억짜리 몸에 하루에 860만원씩 공짜로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욕심 때문이리라. 필자가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하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파오고 허리가 빠져 나가는 것같이 아프다. 그래서 교당(敎堂)엘 갈 때나 여러 모임에 갈 때는 택시로 이동한다.
한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워 지팡이를 안 짚고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원불교 귀의 후 주색잡기(酒色雜技)의 생활을 180도로 바꾼 탓인지 어느 날 갑자기 당뇨병이 찾아왔다. 그 당뇨를 30년 앓았기 때문에 양쪽 다리의 대동맥이 막혔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니까 다리에 피가 잘 통하지 못해 다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진단을 받고 두 번씩이나 제 다리에 피가 잘 통할 수 있게 시술(施術)을 받았다. 그 결과 두 다리의 통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왜 걷지를 못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 젊어서 세계가 좁다하고 뛰어다닌 과보(果報)가 아닌가 생각했다.
원망(怨亡)심을 감사심으로 생각을 돌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하는 사람이라야 행복의 정상(頂上)에 올라갈 수 있다.
필자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 두 다리를 의족(義足)으로 바꾸지 않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리가 불편한 것 외에 다른 모든 기관이 아직은 쓸 만하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도 매일 매일 덕화만발을 쓰고, 사랑하는 도반 동지들과 맑고 밝고 훈훈한 정을 나누니 아마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까?
세 잎 클로버는 행복! 네잎 클로버는 행운? 행복하면 되지 행운까지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일 것이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겼다. 이미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초연한지 오래다. 자식들에게 유언(遺言)도 끝냈다. 이제는 진리께서 언제 불러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한때는 아내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가 먼저 가는 것이 좋을까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마저 생각해 보니 부질없는 생각 같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내가 제반 처리를 마치면 그것도 좋겠다. 반대로 사랑하는 아내의 품에 안겨 내가 먼저 떠나는 것도 큰 복이 아닐는지.
범상(凡常)한 사람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고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크게 안다.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 사람이 평생 많은 재산을 모아놓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서원과 마음공부에 끊임없는 공덕을 쌓아 가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일상의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