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하이바이, 마마!’와 ‘웃으면서 죽는 법’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생사대사(生死大事)보다 크고 중요한 일은 없을 거다. 잘 태어나고 멋지게 살다가 웃으면서 죽는다면 얼마나 원만한 일생이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말이 쉽지 누구나 그것을 원하지만 준비가 없고 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상 죽음에 대한 생각, 최후에 웃으며 갈 수 있는 방법을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의 최신 저서가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이다. 제목처럼 우리가 잘 늙으면 봄꽃보다 고운 단풍처럼 잘 갈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면 죽을 때도 기분 좋게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욕심을 내려놓는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이 들면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욕심 부리면 추하게 느껴진다. 이번 4.15 총선에 정치원로들이 국회의원 한번 더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 욕심 없는 사람이 세상에 제일 귀하다. 노욕(老慾)을 버리고 인생을 갈무리해야 된다.
둘째, 과로하면 안 된다.
과로해서 한번 쓰러지면 그냥 팍팍 늙어 버린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절대로 과로하면 안 된다. 능력에 맞게 일하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
셋째, 주색잡기에 탐닉하면 안 된다.
내가 젊었을 때처럼 주색잡기에 탐닉했더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함께 놀던 동무들은 모두 갔다. 음식도 과하게 먹으면 추해 보인다. 고고하게 늙어야 한다.
넷째, 말수도 줄인다.
나이가 들어 잔소리하면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아는 것 많다고 그걸 다 표현하면 사람들 웃음을 산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연다.
다섯째, 유산 정리다.
재산을 다 자식한테 물려주면 위험하다. 최소한 부부가 자식에게 손 안 벌리는 정도만 남기고 미리 유산을 정리해두면 아름답게 늙을 수가 있다.
여섯째, 죽음의 연마를 한다.
어영부영 살다가 떠나면 창황경조(蒼荒驚?)하여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중음(中陰)에서 떠도는 귀신으로 남을 수 있다. 평소 수행을 통하여 죽음도 미리 연마해 두어야 가볍게 훨훨 날아갈 수 있다.
이 여섯 가지만 실행해 두어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대부분 노인들은 “자는 듯이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의 준비가 없으면, 그건 욕심 아닌가?
부모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누가 갑자기 죽으면 충격이 크다. 죽은 뒤에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죽은 뒤에도 그리워서 계속 운다. 자식은 부모한테 “효도도 제대로 한번 못해 봤다” 이렇게 통곡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떠나야 한다.
그런데 이미 시신은 태우거나 묻어서 썩어버렸는데 계속 울게 되면 이 영혼이 잘 떠날 수가 없다. 못 떠나면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고 만다. 요즘 방영되는 tv-N의 ‘하이바이 마마’라는 드라마를 보면 떠나지 못하는 고혼들이 우굴우굴하다. 한이 남아서든가, 살았을 때 애 먹인 사람들이 고혼이 되어 살아 있는 사람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법’을 평소 연마해 두면 가족이나 친지들도 “살만큼 사셨다. 잘 사시다 가셨다” 이렇게 말하며 착심(着心)을 끊지 않겠는가? 정을 떼는 게 서로 좋은 것이다.
그러면 배우자나 자식도 너무 그렇게 애달프게 울지 않으니까 영가(靈駕)도 쉽게 자기 갈 길 가고 살아있는 사람도 편할 수 있다.
그래서 안 아프고 죽어야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프지 않고 죽으면 그것대로 좋고, 아프고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프다가 죽는 것이 오히려 정을 떼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만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안다고 했다. 왜냐하면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