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온돌방’ 조향미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방 한켠에서 띄우는 메주. 그 속엔 정성과 삶이 담겨 있다. 엄니의 지혜도 함께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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