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경 NYPD ⑤] 1800년 인구 6만에서 100년 새 380만으로···‘런던경찰’ 벤치마킹

1890년대 뉴욕 모습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뉴욕, 1800년 인구는 6만515명이었다. 급격하게 증가했다. 1820년 12만4천명으로 미국 제1위 도시 됐다. 1820년대부터 굶주린 아일랜드인이 대거 이민 왔다. 이 추세에 독일,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세했다. 인구는 계속 불어났다.

살인사건 빈발해도 속수무책이었던 1840년 31만2710명으로 늘어났다. 1850년 59만, 1860년 107만, 1880년 192만, 1890년 269만으로 늘었다.

동유럽과 남유럽인 그리고 유대인이 들어온 1898년 38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민은 싼 임금노동자의 공급원이었다. 일손 부족해 시설 늘리지 못하던 산업계에 귀한 자원이 됐다. 이 노동력으로 공장 확충했다. 미국 산업혁명을 가속시키는 원동력 됐다. 세계 제일의 공업국으로 이끌었다.

이민들의 비참한 일상

모두가 임금노동자 되는 행운아가 되지는 못했다. 기술도 없었다. 겨우 이민선 타는 뱃삯만 가지고 왔다. 새 천지 역시 살기 막막하긴 마찬가지.

일자리 좋은 곳은 오래 전에 이민 와서 터 잡은 사람들이 독점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선착순으로 취업. 밀리면 실업자. 식구들 굶주렸다.

민족, 인종, 출신국가가 다르면 서로 배척했다. 의지할 곳은 먼저 온 자기네 고향사람들이었다.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 곁에서 짐 풀었다.

독일인촌, 노르웨이마을, 리틀 이탈리아, 차이나타운 만들어졌다. 상부상조해도 빈손이라 힘들었다. 막노동 하루에 쉬는 날 이틀. 먹고살기 어려웠다.

온가족이 길거리로 나섰다. 구걸, 도둑질, 소매치기, 깡패, 몸 팔기로 입에 풀칠했다. 사건사고 급증. 게다가 못살겠다고 데모-폭동이다.

시골rural town에서 도시urban city로

뉴욕은 이미 오순도순 조용하게 사는 타운이 아니었다. 처음 발 디딘 네덜란드인, 초기 이민 영국인이나 독일인만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유럽 여기저기에서 온 백인과 유대인, 노예출신 흑인, 중남미에서 모여든 히스패닉, 아시아인이 부대끼며 사는 곳으로 변했다. 도회지였다.

불안정해졌다. 야경夜警은 사건해결 능력 없었다. 그들이 치안 맡아서는 생명과 재산이 위태위태했다.

제대로 된 경찰 필요하다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그게 뭐냐? 주야 24시간 근무하는 경찰 갖는 거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아, 영국 런던스타일 경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니폼 입고 계급장 단 그 군대 같은 경찰 말이냐? 그렇다. 그걸 도입했다가 우릴 공격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언제라도 말 타고 칼 휘두르며 총 쏘며 달려드는 식민지 군대의 무자비한 공격과 검거. 상비군(standing army)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무력을 손쉽게 운용하는 권력이 집중된 중앙정부에 대한 의심(suspicion of centralized authority)도 가시지 않았다.

권력 가진 자의 오만과 남용이 초래한 게 무엇인가. 인간성 부정당하는 굴욕감, 왜소함이었다.

자유-존엄-직업을 희구하며 여기 왔다. 겨우 평등-땅-빵을 얻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과 고국의 전통, 문화, 이상을 그대로 이 새 땅에 심어야 하는가.

“런던경찰은 탄압도구가 아니라고 하더라.” “범죄를 예방하고 보호해 준다더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점차 압제에 대한 두려움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런던과 같은, 급여를 지급하고 24시간 풀타임으로 일하는 경찰(professional police officer)을 고용하자 시민여론 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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