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총①] 영국경찰, 총기 휴대 한다? 안 한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사)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영국 본토는 두개의 섬으로 구성된다.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이다.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역사는 독립운동에 따른 테러로 얼룩졌다. 이곳 경찰은 gun toter 무기 갖고 근무한다.
그레이트브리튼의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경찰은 총기 휴대하지 않는 firearm-free police다. 왜 그랬을까?
1829년 9월 29일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응해 밤에만 일하는 무보수 야경을 없앴다. 대신 24시간 근무하는 유급 런던경찰 만들었다.
일사불란한 지휘와 운영 위해 군대식 시스템 도입해야 했다. 제복 입고 계급장도 달았다. 시민들 반감 거셌다. 이전에 폭동 일어나면 군대 동원됐다. 군인들은 말 타고 칼 빼들고, 총 쏘면서 군중에게 돌격했다.
사상자가 흘린 피 낭자했다. 이를 체험한 시민들, 상비군의 치안출동을 무서워했다. 영국군에 대한 시민인식은 공포였다.
수상 아서 웰즐리 웰링턴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황제 패주시킨 명장이다. 그는 군의 치안투입에 따른 나쁜 이미지를 없애려고 런던경찰 창설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런던시경 출범에 시민들은 저항했다
그런데, 군 이미지 개선도 꾀한 경찰이 또 하나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기껏 만든다는 게 군대와 똑같다고? 압제도구가 하나 더 느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필요 없다는 분위기였다. 대응책 내놨다. ①무기, 휴대하지 않는다. ②제복, 군대가 빨간 색이니까 경찰은 푸른색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무기 휴대 않는 경찰 탄생했다. 비상시 대비용으로는 flintlock pocket pistol 부싯돌점화권총 50정은 비치했다.
치안정세에 능동 대처
1880년대. burglary 주거에 침입하는 도둑과 강도 성행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house breaker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무장강도도 많았다.
1884년 급기야 런던시경 경찰관 두명이 사살당하는 사건 일어났다. 경찰무장 여론 비등했다. 공개토론 거쳐 결론 도출했다.
①지휘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②안전사용을 신뢰할 수 있는 순찰경찰관에 한하여 지급했다. 유니폼 안에 넣어 보이지 않게 휴대했다.
이때 희망자 6325명 중 4430명을 선별 리볼버 지급했다. 1936년 이 제도 폐지됐다.
1887년 2월 18일 최초의 경찰관 권총 발포 발생. 주인공은 헨리 오븐. 적법판정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육군무기 빌려
전쟁이 터지자 요인암살 위험이 현안으로 대두했다. 왕족, 수상, 3부 요인, 외교사절 경호팀에게 군의 무기 임대해 지급했다.
나치의 침공과 사보타지 파괴활동도 대비해야 했다. 빌린 권총으로 사격훈련 했다. 여섯 발 사격에 세 발이 표적에 들어가면 합격이다.
그러나 권총집은 전시 물자부족으로 지급하지 못했다. 따라서 휴대는 불가능. 소총은 1916년 사용폐기 된 구식이었다. 경찰서에 보관했다.
1948년 냉전대비용 무기 마련했다. 소총 스텐 건과 리-엔필드, 그리고 권총을 경찰서 무기고에 뒀다가 유사시 사용케 했다.
증가하는 총기사용 범죄
1952년 순경 사살되고 경사 중상 입는 사건 발생. 총기휴대실태 조사결과 런던시경 경찰관 중에서 형사의 15%외에는 휴대하지 않음이 판명됐다.
이에 따라 먼저 Special Branch(테러대응 부서), Royalty Protection Officer(왕족경호원)에게 무기를 지급했다. 종류는 베레타 반자동 권총.
순찰경찰관에게도 무기 휴대조치 취했다. 적격자는 무기취급경험이 있는 군 제대자와 사격클럽 회원이었다.
아울러 이들 경험자 가운데서 사격 교관요원을 선발, 육군보병사격학교에 보냈다. 훈련 마치고 오면 경찰전임사격교관으로 임명했다.
1966년 런던경찰 세명 피격사망. 이를 계기로 총기만 취급하는 전문가 양성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