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난민②] 제주 예멘난민 사태 이후 난민법 개정과 시민사회

제주 난민과 관련해 우리 사회는 찬성과 반대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작년 봄 500여 예멘 난민 신청인들이 제주에 도착하며 한국사회에 난민 이슈를 제기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난민에 대한 인식이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나? 다행히 작년 사건을 계기로 어느 정도 인식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난민에 관한 한 한국사회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엔>은 5월 18~19일 광주에서 5·18기념재단 주최로 열린 ‘2019 광주아시아포럼’의 ‘학살과 난민?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 책임’세션에서 발표된 글들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이탁건 공익법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시행했다. 이 사실은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큰 성과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극히 낮은 난민인정률 (2017년 기준 1.51%)이 방증하듯이, 한국이 난민보호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정부는 대체로 ‘조용히 묵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입법부도 난민법 제정 이후에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를 기화로 도리어 국가가 혐오 정서에 적극 편승하는 흐름이 목격된다. 필자는 2018년 발의된 입법부의 난민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이같은 국가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난민법 제정 배경

난민법 제정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피난처 등이 국가인권위원회 후원으로 2004년 국내 최초로 국내 외국인난민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내며 출입국관리법과 독립된 ‘난민인정과 처우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을 주장하였다. 이후 2006년부터 난민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월 1회 난민법 제정안을 연구하는 모임을 가져오다 점차 난민단체, 활동가, 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참여하는 ‘난민지원 네트워크 월례모임’으로 발전했다. 이 모임에서 난민법 제정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법무부장관에게 별도의 난민법 제정을 권고하고, 유엔난민기구도 독립된 난민보호법 제정을 정부에 제안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을 반영해 2009년 황우여 의원이 독자적인 단일 난민법으로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정가결을 거쳐 2011년 12월 29일 ‘난민법’으로 통과되고 마침내 2012년 2월 10일 공포번호 11298로 제정?공포되었다. 이 법은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난민법은 기존 시민단체 논의를 적극 수용·종합하여 체계화된 법률이며, 시민단체들과 변호사들의 역할이 난민법 제정에 주효했다. 다만 입법운동의 동력이 법안 준비까지로 그치고, 국회 상정 이후에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반성도 있다. 난민법 제정 이후 난민신청심사의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절차 보완,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인정제도의 절차적 보완,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규정 보완 등의 개정안이 몇차례 제출되었으나, 유의미한 개정은 없었다.

그러나 2018년 이전과 달리, 2018년 한해 동안 난민신청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심사절차를 난민신청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개악’하는 다수의 개정안이 제출되었다. 이른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 따른 여론에 편승한 개정안들이다.

제주 예멘난민 사태와 정부의 ‘비겁한’ 대응

561명의 예멘난민이 2018년 4월 및 5월 제주도로 입국하여 난민신청을 하였다는 단순한 사실이, 안전사회·공정사회에 대한 갈망·젠더·계층 간 갈등 등 다양한 한국사회의 모순과 폭발적으로 결합하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논란으로 비화했다. 70만명 이상의 시민이 청와대에 난민법 폐지 청원을 하였다. 또 스스로 ‘일반국민’이라고 칭하는 단체들이 인종주의적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정부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법무부는 작년 4월 말 예멘 난민신청자의 출도(出島)를 금지하고, 6월 1일 예멘을 무비자 국가 명단에서 삭제하였으며, 같은 달 6일에는 제주도 내 외국인 거주지역 내 순찰을 강화하여 ‘범죄와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명백하게 인종차별주의적인 대중정서에 순응하고 오히려 독려하는 입장에 다름 아니다.

이후 2018년 말까지 법무부는 484명의 난민신청자 중 362명에게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하고, 34명에게는 단순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결국 예멘 난민신청자 중 “난민은 전무하다”는 것이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난민협약상 사유와 관련해 개별 난민심사를 하지 않고 내전 중이라는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편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난민지원 단체들의 비판을 면치 못했다.

폭발적인 외국인 혐오정서에 대한 입법부 반응은 어땠나?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가 여론의 주목을 받은 후부터 국회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난민법 개정안이 우후죽순처럼 발의되었다. 발의 법안을 보면 (1)난민신청 장소를 제한하거나 입국 형태에 따라 난민신청 자격을 박탈하는 등 난민신청권을 제한하는 내용 (2)거짓서류 제출 또는 거짓 진술 또는 사실을 은폐한 경우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이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 (3)난민신청자의 거주 지역을 제한하는 내용 (4)난민 불인정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 등으로 나뉜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대체로 비현실적이거나 국제법상 확립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1)난민신청자의 국적국 또는 상주국 소재 대한민국 공관(이하 ‘재외공관’)으로 난민신청 장소를 제한하는 법안은 ‘국적국 밖에 있는 자’라는 난민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고, 한국 내에서 체류하다가 난민 사유가 발생한 ‘체재 중 난민’의 경우는 아예 상정하지도 않고 있다. 제주도 무사증 정책에 따라 입국한 외국인에게 난민신청권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정안도,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또 모든 난민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난민협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2)거짓서류의 제출 또는 거짓 진술 또는 사실 은폐의 경우를 난민 불인정 사유로 추가하고 있는 개정안들은 난민신청자의 불법 입국 또는 체류 사실 자체로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난민협약의 규정(제31조)과 충돌할 위험이 있다. 난민신청자가 난민인정을 위해 심사과정에서 거짓 서류를 제출하였더라도 (ㄱ)위조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위조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 (ㄴ)위조사실을 알고 제출하였으나 난민사유가 명확하게 존재하며 이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고 신뢰할만한 경우 (ㄷ)악의로 제출하였으며 제출된 위조 서류가 난민지위 인정 여부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 등을 분리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ㄴ)과 (ㄷ)의 경우 어차피 실무적으로 심사과정 중 진술의 신빙성 판단 단계에서 당연히 거짓서류 제출, 허위진술 사실 등을 고려하게 된다.

거짓서류, 허위진술 등을 제외한 진술의 일관성 및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난민 지위를 불인정하면 족한 것이다. 또 구체적인 난민심사 없이 거짓서류 제출, 허위진술, 사실은폐 행위만으로 일응(prima facie) 난민지위를 불인정하겠다는 개정안의 취지는 난민협약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 (3)“난민인정 결정 전 자유로운 이동으로 불법체류 및 범죄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난민주거시설에 모든 난민신청자를 수용하겠다는 개정안은 이동할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여 자유권규약 및 난민협약에 위반될 위험이 높다. (4)‘안전 및 사회질서를 해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불확정 개념을 불인정 사유로 새로 도입한 개정안은 이미 난민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인정 사유와 중복되거나, 난민협약 상의 불인정 사유보다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넓어 오용의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의원 개정안들은 발의 당시 한국사회에서 넘실댔던 불안과 공포의 담론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반영한 흔적이 보인다. ‘가짜난민’ 담론이 유포되자 ‘거짓서류 제출’ 등을 난민 불인정 사유에 추가하고, 처벌을 강화하였다. “무비자로 난민들이 몰려온다”라는 공포가 확산되자 제주도 무사증 정책을 통해 입국한 난민들의 난민신청권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박탈하거나, 재외공관에서만 난민신청을 받도록 하였다.

“난민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복지 혜택을 누린다”라는 불만은, 생계비 지원 삭감 제안으로 이어졌다. “난민신청자들은 관리 감독 없이 전국에 흩어진다”라는 주장은 모든 난민신청자를 시설에 수용하는 법안에 착실히 반영되었다. 이러한 담론들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숙성되지 않고, 선정적인 보도와 인터넷여론 형성에 힘입어 급격하게 확산된 측면이 있다.

난민법 개정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노력

의원 입법 개정안 자체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폭발적인 난민 반대 여론에 맞추어 짧은 시간 내 집중적으로 발의되었으나, 이후 여론의 관심이 식으면서 개정안들이 즉시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희박했고, 실제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입법을 포함한 난민법 개정에 대응하는 실증적인 반대논거는 그동안 축적된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터잡아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난민지원단체들은 허위 면접조서로 인해 난민불인정결정을 받은 다수의 피해자를 대리하여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이러한 피해 사례들은 ‘남용적 난민’을 걸러내고 심사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아닌, 심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 등에는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는 등의 심사제도 개편의 위험성은, 현재 출입국항에서의 불회부심사로 인해 부당하게 입국금지되어 난민인정심사를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방증한다.

앞에서 난민법 제정 과정과 최근 개악의 시도에 대해 살펴 보았듯이 향후에도 입법부 및 행정부의 난민법 개정 시도는 난민 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보다는 ‘난민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출입국 관리 강화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응하는 국내 시민사회의 노력은 국제적인 연대에 기반해야 한다.

난민협약의 해석과 적용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기준과 해외의 적극적인 선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국내법과 제도가 따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난민 발생과 이동 원인 및 현황은 국제적인 관점에서 분석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의 이민의 주요 경로 중 하나가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노동이주다.

이같은 이주경로를 따라, 혹은 인접 국가로 피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특히 아시아 국가 출신의 ‘난민신청자들은 돈 벌러 온 가짜난민’이라는 담론이 우리 사회에 넓게 퍼져 있다. 국가별 박해상황과 타국에서의 난민신청 및 인정 현황에 대해 정확히 분석·대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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