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대로 알기] 탁구···’죽의 장막’ 걷어내고 ‘올림픽 효자’
[아시아엔=중국을 읽어주는 중국어교사 모임] 올림픽 효자 종목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른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하계올림픽에는 ‘양궁’, 동계올림픽에는 ‘쇼트트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양궁의 경우는 1984년 LA 올림픽부터 쇼트트랙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부터 골드 행진이다.
동계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중 대부분을 쇼트트랙이 차지하는데, 평창올림픽까지 2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역대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 개수가 총 56개다). 이에 비해 타 종목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비롯해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획득한 금메달과 스켈레톤 윤성빈의 금메달까지 다 합쳐도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 획득한 금메달 수에 비하면 약 4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양궁과 쇼트트랙을 그렇게 잘할까? 두 종목이 한국인 체형과 체질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일까? 그 동안 계속 좋은 성적을 내니 우리는 당연하다고만 여겨 왔지만, 양궁과 쇼트트랙에서 메달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국민 다수가 실망할 것이며 몇몇은 원망도 할 것이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떻게 훈련했는지 관심도 없고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에게도 우리의 양궁, 쇼트트랙과 같은 종목이 있을까? 다시 말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면 국민으로부터 원망을 받는 종목 말이다. 아마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중국 탁구의 높은 벽 얘기를 올림픽 때마다 들어 봤을 터다. 올림픽 내내 탁구 경기장에선 수시로 중국 국기가 올라가고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진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탁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28년간 여덟 차례의 올림픽에 걸린 32개의 금메달 중 28개의 금메달을 중국이 가져갔다. 그 외에 금메달을 딴 나라는 한국이 세 개, 스웨덴이 한 개로 두 나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중국인이 왜 그렇게 탁구를 잘 치는지 잘 모른다. 우리가 양궁과 쇼트트랙을 왜 잘하는 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언가 계기가 있지 않을까?
중국에서 탁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핑퐁외교’부터. 핑퐁 외교는 탁구외교를 말한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 대회부터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 중국은 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 15명을 공식적으로 초청했다. 그 이후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관계가 개선되면서 바로 다음 해인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러면서 냉전 시기의 갈등이 차차 해소되는데, 이후 사람들은 이걸 핑퐁외교라고 불렀다.
그 이후로 중국의 많은 인민 대중이 탁구에 관심을 가지고 탁구를 치게 되었다. 또한 중국 정부에서 집중 육성 계획을 세워 탁구선수를 대대적으로 길러냈고. 탁구가 공·라켓과 탁구대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운동인데,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탁구대를 각 지역에 배치해 주었다.
현재 중국탁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만 2000만명이 넘는다. 국내대회에서 1등하는 것이 국제대회 1등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에서 탁구로 성공하려면 다섯살쯤부터 전문적으로 배워야 한다. 소질이 있는 아이는 열두살쯤 각 성의 대표가 되고 열다섯 살쯤에 국가대표가 된다고 한다. 가끔은 중국 국가대표가 정말 되고 싶지만 선발에서 밀린 선수들이 다른 나라에 귀화해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그들 실력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도 당예서(唐汭序)나 전지희(田志希) 같은 중국에서 귀화한 탁구 대표선수가 있었다.
중국은 그렇게 많은 탁구선수들을 육성하지만 학교별·학급별 또는 지역별로 매우 깐깐한 체계를 갖춰 선발한다. 국가대표도 1진과 2진으로 나누고, 성·시·구·대학·체육중고등학교·초등학교 팀으로 나눠 수준에 맞게 관리한다. 특히 전문선수와 예비선수를 분류는 하지만 예비선수 역시 체력뿐 아니라 심리 상태, 성격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안재형과 자오즈민 커플탁구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우리나라가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기 전, 한국 국가대표 안재형과 중국 국가대표 자오즈민(焦志敏)이 탁구로 먼저 교류의 끈을 이었다. 그들은 서울올림픽에 출전해 둘 다 메달을 획득한 실력 있는 탁구선수였다. 법적 장애물을 극복할 만큼 서로 열렬히 사랑해 1989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념과 국경을 뛰어넘은 이상적인 사랑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정치든 문화든 스포츠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고, 잘 살자고 하는 행위들이니 사랑으
로 넘지 못할 벽은 없을 터다. <출처=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