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세시풍속···오곡밥·부럼깨기·지신밟기·쥐불놀이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파(寒波)에 꽁꽁 언 땅을 뚫고 봄나물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입춘(2월 2일)과 설날(2월 16일)이 지나고 3월 2일은 정월대보름이다. 이날은 마침 스님들이 동안거를 마치는 날과도 겹쳐 사찰에선 동안거 해제 법회가 열리기도 한다.?

봄의 절기는 입춘(立春, 봄의 시작). 우수(雨水, 2월 19일경, 봄비가 내리고 싹이 틈), 경칩(驚蟄, 3월 5일경,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남), 춘분(春分, 3월 20일경, 낮이 길어짐), 청명(淸明, 4월 4일경, 봄 농사 준비), 곡우(穀雨, 4월 20일경, 농사에 필요한 비가 내림)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24절기와 명절에 맞춰 절식(節食)과 시식(時食)을 먹었다. 입춘 때 먹는 절식으로 궁중에서는 오신채(五辛菜)로 만든 오신반(五辛盤)을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고, 민가에선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입춘에 먹는 오신반은 비타민 섭취를 위시하여 겨우내 추위에 혹사당했던 장기의 회복을 돕는 봄철 보양식이다.

오신채는 파, 마늘, 달래, 평지(유채), 부추, 무릇(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새순 등을 말한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오방색(五方色)을 골라 무쳐 먹었다. 노란(黃)색의 나물을 가운데에 놓고, 동서남북에 靑, 赤, 黑, 白 색깔의 나물을 놓아 사색당쟁(四色黨爭)을 타파하라는 화합의 의미가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五常: 仁, 義, 禮, 智, 信)를 북돋는 것으로 보았다.

입춘 절식의 하나인 오신반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입춘일에 경기도 산골지방에서 움파, 산갓, 당귀싹 등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규곤시의방>(閨?是議方)에는 “겨울에 움에서 당귀, 산갓, 파 등을 길러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에 이미 정착된 절식으로 추측된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정월령에는 “엄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하여 오신채를 부러하랴”로 되어 있다. 오신반은 상류층에서 먹었던 음식이란 얘기다.

오신반은 다섯 가지의 맵고 자극이 강한 모듬나물과 함께 먹는 밥이다. 계곡이나 산야의 눈 속에서 자란 새싹을 이용한 것으로, 겨울을 지내는 동안 신선한 채소가 귀했던 옛날의 실정을 생각할 때 옛 사람의 지혜가 담긴 절식이다. 삶에는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매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괴로움을 극복하라는 의미도 있다.

정월(正月)은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쳐 보는 달이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 민족의 ‘밝은 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있다. 즉, 밝은 대보름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앙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나라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고 해 큰 명절로 지내며, 일본도 소정월(小正月)이라고 부른다. 한국·중국·일본에서 정월대보름이 중요한 명절이 된 이유는 음력을 사용함에 따라 보름달이 갖는 뜻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대보름날에 동제(洞祭), 줄다리기 등 규모가 큰 행사들이 많다. 임동권(任桐權)이 지은 <한국세시풍속>에는 12개월 동안 총 192건의 세시행사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정월 한달 동안 102건이 있어 전체의 절반이 넘으며, 정월 대보름날 관련 항목이 55건으로 정월 한달의 반이 넘는다.

설날이 가족 또는 집안의 명절인데 비해 정월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로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사를 한다. 이에 농촌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공동의 기원인 풍년을 기원하는 형태가 많다. ‘지신(地神) 밟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에게 고사(告祀)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풍속이다.

대보름날에는 세시풍속으로 ‘오곡밥’을 지어 먹는다. 오곡은 예로부터 다섯 가지 곡식, 중요한 곡물, 모든 곡물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중국의 경우, 주례(周禮)에서는 쌀·기장·피·보리·콩을, 예기(禮記)에서는 마(麻)·기장·피·보리·콩, 관자(管子)에서는 기장·차조·콩·보리·쌀을 오곡으로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곡으로 쌀·보리·조·콩·기장을 꼽는다. 오곡밥은 대보름날 먹는 절식(節食)의 하나이다.

‘오곡밥’은 풍농(?農)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어 ‘농사 밥’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오곡밥을 보름날에 먹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보름 전날에 먹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먹는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찰밥과 약밥을 먹는 풍속이 있으며, 절식으로 약밥·오곡밥·묵은 나물·복쌈·부럼·귀밝이술 등이 있다.

동양철학에서 숫자 오(五)는 우주 만물의 탄생과 성장을 주재하고 조화시키는 신비한 숫자이다. 이에 동양에서는 정신과 물질의 모든 개념과 현상 및 근원을 대개 다섯 가지로 종합하여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오행(五行)·오륜(五倫)·오감(五感)·오방(五方)·오색(五色)·오미(五味)·오복(五福)·오곡(五穀) 등이 있다.

약밥(藥飯)은 찹쌀을 쪄서 대추·밤·팥·꿀·참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찌고 잣을 박은 것이다. 1819년(조선 순조 19년)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열양세시기>(?陽歲時記)에는 약밥을 조상께 올리고, 손님에게 대접하며 이웃에 보내기도 한다고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오곡밥과 약밥을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서 풍농과 안녕, 행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쫓았다. 성씨(姓氏)가 다른 세 집 이상 이웃집의 밥을 먹어야 운이 좋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오곡밥 등을 나눠 먹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묵은 나물과 복쌈을 먹는 풍속이 있다. 오곡밥과 삶은 나물을 배추 잎, 취나물 등에 싸서 ‘복쌈’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여름철에 호박고지, 무고지, 가지나물, 버섯, 고사리 등을 말려 두었다가 삶아서 무쳐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정월대보름 아침 해뜨기 전에 만난 사람에게 “내 더위”하며 더위를 파는 풍속도 있으며, “내 더위 사라”며 친구나 지인들에게 더위를 팔기도 한다.

귀밝이술(耳明酒)은 대보름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데우지 않은 청주(淸酒)를 마시는데, 아이들은 입술에 술을 묻혀만 주고 마신 것으로 여긴다. 어른들은 귀밝이술을 마실 때 “귀 밝아라, 눈 밝아라”라는 덕담을 한다. 이는 귀가 밝아진다는 의미와 일년 내내 기쁜 소식을 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럼(부스럼)깨기 풍속에 관하여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상원 이른 아침에 날밤, 땅콩, 호두, 잣, 은행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물거나 까먹으면서 “‘올 한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수(祝壽)하니, 이것을 ‘이 굳히기’(固齒之方)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럼깨기에 노인들은 딱딱한 견과류 대신에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기복(祈福)행사로 볏가릿대 세우기, 복토(福土)훔치기, 용안뜨기, 다리밟기, 나무시집보내기, 백가반(百家飯)먹기, 나무 아홉짐하기 등을 행한다. 또한 농점(農占)으로는 달집태우기, 닭울음점, 사발재점, 그림자점, 달불이, 집불이 등이 있다. 낮에는 연날리기, 윷놀이 등 다양한 전통놀이를 즐긴다.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 달이 떠오를 때 나뭇가지 등을 모아 만든 달집을 태우면서 풍요로운 새해를 기원하고, 액운을 내쫓는 세시풍속이다.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논둑과 밭둑에 ‘쥐불놀이’(서화희 鼠火戱)를 한다. 서화희는 논밭두렁의 잡초와 잔디를 태워 해충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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