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병 별세 ‘분단의 여배우’ 최은희씨 두눈 기증하고 천국에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영화배우 최은희(崔銀姬)씨가 4월 16일 오후 4시 30분쯤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 고인의 장남 신정균 영화감독은 “어머니가 서울 가양동 한 내과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최은희씨는 척추관협착증(spinal stenosis)으로 2010년부터 휠체어 신세를 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4년부터 1주에 3회 신장투석을 받고 있었다. ‘세기의 연인’ ‘분단의 여배우’로 불렸던 전설의 스타 최은희씨는 한국영화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장기 기증 사전서약대로 두 눈을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염수정 추기경은 “최은희 소화 테레사님의 선종(善終)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고인은 영화 속 변화무쌍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신 분으로 기억합니다”라고 했다. 최은희씨의 천주교 영세명은 소화(小花) 테레사(Teresa), 아호는 향은(鄕恩)이다.

고인은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꼽았으며, 이 노래를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틀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흘려버린 내 인생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우-”(하략)

최은희의 본명은 경순(慶順)이며, 일제 강점기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경성기예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아랑에 입단하여 무대연기를 배웠고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극단 신협과 해방 후에 재건된 토월회, 극예술협회 등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최은희는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해 <밤의 태양> (1948), <마음의 고향> (1949)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까지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1961년에 발표한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등 세편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서울에 남았다가 북한 내무성 소속 경비대협주단에 들어가게 되어 낮에는 연극 연습을 하고 밤에는 사상교육을 받았다. 이후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평남 순천까지 올라갔다가 겨우 탈출하여 한국군을 만나 ‘정훈공작대’에서 위문공연을 하게 되었다. 정전협정 후 1953년 신상옥 감독의 <코리아>에 출연한 이후 그와 결혼했다.

최은희는 1978년 1월 14일 홍콩에서 북한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공작원에 의해 납북(拉北)되었다. 남편 신상옥도 최은희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해 7월 19일에 역시 납북되었다. 신 감독은 북한에서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면서 최은희를 찾았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납북 5년 만에 평양에서 다시 만났으며, 북한에서 영화 활동을 하면서 영화 17편을 제작했다. <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1984년 체코 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1986년 영화제 참석 등을 명분으로 유럽으로 향한 길에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대사관으로 망명하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탈북에 성공했다. 망명 이후 1999년까지 주로 미국에서 체류하다가 귀국하여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해 뮤지컬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2002년에는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영국 영화감독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은 2016년 최은희-신상옥 부부의 납치와 탈출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개봉했다. 이 영화에는 이들 부부의 납북 전후 과정과 북한에서의 생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녹음한 김정일의 목소리도 담겨있다.

최은희는 1999년 귀국한 후 안양신필름예술센터 학장, 동아방송대 석좌교수,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명예교수로 후배를 양성했다.

최은희는 신상옥(1926-2006) 감독이 타계한 후 건강이 악화되었다. 2014년부터 신장 질환으로 투병하였다. 최은희는 몸이 불편해 성당엔 가지 못했지만 묵주(?珠) 반지를 끼고 ‘묵주 기도’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은희-신상옥은 부부의 정(情)도 정이지만 영화동지로서의 정이 더 깊었다고 한다. 고인은 신 감독에 대해 남편이라기보다 존경하는 예술가로 생각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최은희는 2006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공로상, 2010년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최은희의 고백>(2007)이 있다. 최은희가 살아온 92년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최은희씨가 투병한 신장병은 신기능이 80% 이상 고장 난 다음에야 자각증상이 나타나는 난치병이다. 또한 세균감염이나 약물남용을 제외하곤 발병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예방도 어려운 질병이다. 신장병은 합병증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고혈압, 뇌졸중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특히 한번 망가진 신장은 회복이 안돼 평생 투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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