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 처칠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건···”
히틀러 위장평화 공세 이겨낸 처칠의 용기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요즘 극장가에서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위장평화 공세 속에서도 영국을 지킨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총리의 일화를 다룬 다.
‘암흑의 시간’(Darkest Hour)은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6월 18일 연설에서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 끝난 후의 처참한 상황을 가리켜 한 말이다. 처칠은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처칠은 제7대 말보로 공작 존 스펜서 처칠의 삼남 헨리 스펜서 처칠과 미국의 부호 레너드 제롤의 딸 제니 게롬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칠은 학교에서 말썽꾸러기 낙제생이었다. 해로우 학교를 졸업하고 삼수 끝에 1893년 샌드허스트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150명 중 8등을 했다. 1900년 보수당 후보로 출마하여 25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하여 1904년 자유당으로 옮겼으며, 1906년부터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 식민장관,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15년 해군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1917년 군수장관으로 입각하여 육군장관 겸 공군장관, 식민장관 등을 역임했다.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과 노동운동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처칠은 분열로 지리멸렬해진 자유당을 떠나 보수당으로 복귀했다.
처칠은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는 화가이기도 했으며, 신문에 에세이와 시사평론을 많이 기고했다. 또한 소설, 전기, 회고록, 역사서 등을 집필한 작가, 저술가였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처칠은 1945년 총선 패배 뒤 1951년 다시 총리에 취임하고 경(卿)의 칭호를 받았지만, 1955년 당수 자리를 이든(Anthony Eden, 1897-1977)에게 물려주고 하원 평의원으로 머물다 1964년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처칠은 1965년 1월 24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02년 BBC가 영국인 1백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명’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 해군장관 출신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 전시(戰時) 내각의 총리로 임명되는 1940년 5월 10일부터 덩케르크 작전(다이나모 작전)을 지휘한 직후인 5월 28일까지 19일간의 행적을 기록했다. 작전 지휘와 관련된 반대 진영과의 갈등,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이어기는 고뇌가 펼쳐진다.
2차세계대전 중,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에게 밀려 프랑스 해안가 덩케르크(Dunkirk)에 고립된다.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은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제2차세계대전 초기 작전 중 하나로 덩케르크 전투에서 벨기에군과 영국 원정군 및 프랑스군 등 총 33만8천여명을 구출할 목적으로 실행됐다.
영국 해군 베트람 렘세이 중장이 작전을 계획하여,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다이나모 룸(‘다이나모’ 즉 도버성 지하의 해군지휘소의 방 이름)에서 이 작전에 대한 개요를 설명한 것에서 ‘작전’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5월 26일부터 9일 동안 860척의 선박이 동원되어 총 338,226명의 병사(영국군 192,226명, 프랑스군 139,000명)를 덩케르크에서 구출하였다.
덩케르크의 작은 배(Little Ships of Dunkirk)에는 여러 종류의 어선, 유람선, 화물선, 구명정 등 민간선박들이 긴급히 징발되어 병사들을 해안에서 바다에서 대기 중인 대형 선박(구축함)으로 운반했다. 이 작은 배들의 ‘기적’은 영국 국민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 작전은 성공했지만, 영국군이 프랑스에 반입한 화포 등 중장비 및 차량은 모두 버리고 철수했다.
다이나모 작전이 완료되기 전, 처칠은 작전 전망에 비관적이어서 하원에서 “무겁고 엄숙한 이야기를 전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후 처칠은 작전의 성과를 ‘기적’이라고 했다. 언론도 “대실패가 대성공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영화 속에 묘사된 영국 국민의 단호한 항전 의지가 감동적이다.
영국 국민이 단결하여 역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사용된 ‘덩케르크 정신’이란 용어를 지금도 영국인에게서 들을 수 있다.
영화 장면 중 두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당시 영국 내각과 정치권에서 히틀러와의 평화협상을 종용하는 정치인들에게 처칠은 “호랑이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협상을 한단 말인가!”(You cannot reason with a tiger when your head is in its mouth)라고 일갈(一喝)하는 장면과 대국민 라디오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We shall never surrender)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다키스트 아워>는 오는 3월 열리는 미국 아카제미 시상식에 작품상·촬영상·남우주연상·미술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상영관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영화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정치인들이 꼭 관람하길 권한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 기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