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인생 차민수 31] 미-중은 핑퐁외교로, 한-중은 바둑으로 빗장 풀어
[아시아엔=차민수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블랙잭 이길 수 있다> 저자, 강원관광대 명예교수] 중국인 가운데 정식으로 비자를 발급받아 대한민국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은 누구일까? 미국에 유학 중이던 ‘엄중태’란 학생이다.
엄중태는 1982년 미국에서 주최하는 아마추어 바둑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한국에 이 소식을 전하니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는 한국에 데려올 수 없느냐고 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을 ‘중공’으로 부르던 시절이라 LA 한국총영사관을 방문하여 여권을 사용하지 않는 백지장에 비자(페이퍼 비자, Paper Visa)를 받았다.
나와 중국기원의 오수전 회장이 스폰서를 하며 최초의 한미친선 아마교류전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나는 급히 한미교류전의 구색을 갖추고 미국팀 단장이 되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챔피언인 중국인 엄중태 아마 6단과 한국동포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신흥수 아마 6단이, 미국인으로는 USC의 물리학 교수로 재직중인 천재 물리학박사 리처드 도렌(아마 5단)이 있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여권을 내놓으니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이민국 수속도 생략한 채 일행 전부를 그냥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차 한잔 마시며 입국수속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수속을 다 마친 출입국 담당 직원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처음 보는 중국 여권이라며 신기해 했다. 그들은 돌려가며 엄중태씨 여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중태씨는 처음으로 당하는 광경에 극도로 긴장하는 듯했다. 때마침 안기부직원이 도착해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공항에는 김인 국수, 안영이 선생, 오수전 회장과 한국기원 관계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소공동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여장을 풀고 한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우리들이 묵는 방에는 “환영,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적힌 화환이 있었다.
청와대에서 화환이 도착하자 갑자기 호텔요금을 절반으로 뚝 잘라 주었다고 한다. 다음날에는 롯데백화점을 거쳐 종로에 있는 한국기원을 방문하였다.
저녁에는 한국측 선수단과 만찬이 있었다. 한국측에선 안영이 아마 5단, 허신 아마 6단, 정건호 아마 6단 등이 참석했다. 최초로 방문하는 중국인을 위하여 안기부, 경찰 등 기관 6곳에서 비밀경호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안기부가 어김없이 알고 있었다. 김인 9단이 친구인 중국 한의사를 데리고 호텔로 나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저녁에 술 한잔 하고 나를 만나려고 방문하였는데, 나중에 중국인 한의사가 안기부에 불려 다니며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중국과 미국이 핑퐁외교로 막혔던 물꼬를 텃다면 한국은 이렇게 바둑으로 빗장을 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