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서 드라마로 ‘브라질 한류’ 드디어 물꼬···이민호·박신혜 최고 인기
[아시아엔=정길화 전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언론학박사] 브라질에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한국드라마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발표한 ‘한국 콘텐츠 브라질 시장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6편 이상의 한국드라마를 시청했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80%에 달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연령대로는 30대 미만의 젊은 여성이 85.6%를 차지했다. 60% 이상 백인인 이들은 주로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는 가운데 좋아하는 배우로 이민호(남자)와 박신혜(여자)를 꼽았다.
이 조사는 한국드라마 시청 경험이 있는 521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중남미 33개국 중에서 브라질이 그동안 한류 문턱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케이팝과 드라마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드라마의 경우 멕시코, 파나마, 페루, 칠레, 콜롬비아는 물론 자존심이 세다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성과가 있었는데 브라질에는 케이팝과 달리 한류 드라마의 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브라질 콘텐츠시장의 경우 2015년 전년대비 4.1% 성장한 382억8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멕시코나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큰 규모에 해당한다.
브라질 최대의 방송 <글로보>(Globo)는 매출로 보아 미국 <ABC>의 뒤를 잇는 방송사인데, 이 글로보를 필두로 한 5대 민간상업방송사가 주도하는 브라질 방송계의 진입장벽은 매우 높다. 자체 제작역량이 탁월하면서 문화적 보수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한류 드라마는 중남미 각국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 중남미 10여개국에서 방송된 <대장금>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이후 멕시코에서 호평 받은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에서 선전한 <천국의 계단> 등은 우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브라질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드라마의 인지도를 높이고 콘텐츠의 맛을 느끼게 하는데 시간과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드디어 2015년 이후 KBS의 <아이리스>가 글로보의 위성채널에서 방송된 것을 비롯해, jtbc의 <해피엔딩>과 <그녀의 신화> 등이 브라질 지상파 방송인 <헤지 브라지우>(Rede Brasil)의 문을 속속 두드렸으나 반향은 크지 않았다. 유아 애니메이션인 <뽀로로>가 영국과 브라질 국산 애니메이션이 버티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어느 정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의 경우 브라질에서 슈퍼주니어, 엠블랙, 엑소, 방탄소년단 등의 인기가 드높다. 이들의 공통점은 브라질 현지 공연을 했다는 점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경우 매우 강력한 티켓파워를 보이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팬덤이 아이돌의 현지 공연을 계기로 현저히 확장된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에는 이들 케이팝 아이돌의 춤과 의상을 따라하는 커버댄스팀이 활성적이다.
방송콘텐츠는 기본적으로 B2B 즉 방송사와 방송사간의 거래를 중심으로 한다. 마이애미 NATPE나 칸느 MIP 등 국제적인 콘텐츠 마켓에서 바이어와 셀러가 만나 콘텐츠의 ‘간’을 보고 딜 메모(가계약서)를 나누는 등 ‘밀당’ 끝에 계약이 성사된다. 이후 콘텐츠 재가공(현지어 더빙)이 이루어진 뒤에 해당국의 시청자들은 한국드라마를 보게 된다. 낯선 콘텐츠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신중함과 보수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 페이스북 등 SNS의 대두와 최근 비키, 드라마피버,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한류 팬들은 자국 채널에서의 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거의 실시간으로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콘텐츠를 향수할 수 있다.
더빙이 아닌 포어 자막을 선호하는 매니아 시청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한국 연기자의 오리지널 음성을 즐기고 한국어 공부까지 할 수 있어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콘텐츠진흥원의 이번 브라질 현지 조사 결과, 좋아하는 한국드라마로는 <태양의 후예>(KBS2), <W>(MBC),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SBS) 등이 꼽혔다. 5년 전 MBC 중남지사의 조사에서 로맨틱 코디물인 <내조의 여왕>이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과 유사하다.
또한 응답자들은 한국드라마 시청을 계기로 한국 음식, 화장품, 패션·의류 등의 순으로 한국 제품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2015년 상파울루 한국문화원 조사에서 케이팝, 드라마, 한국어, 한국음식의 순으로 관심을 보인 결과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원래 학계에서 한류 1.0은 드라마, 한류 2.0은 케이팝이라고 한다. 중남미에서는 지역적, 문화적 요인으로 케이팝이 선도하고 드라마가 후속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케이팝으로 형성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드라마, 음식 등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향후 과제는 한국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면서 수익모델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여기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류는 단기투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다른 목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