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프로그램···“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 해라”

개그우먼 이수지(왼쪽)와 푸드크리에이터 밴쯔가 2017년 7월 16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1인 창작자 축제 ‘제2회 다이아 페스티벌’에서 맛있는 소개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방송, 저 채널…한국인의 불안과 허기 반영

[아시아엔=정길화 MBC PD, 언론학 박사] 도처에 먹방이다. 여기도 먹방, 저기도 먹방···. 웬만한 관찰예능에서도 먹방 분량은 빠지지 않는다. 익히 알다시피 먹방(영어: mukbang 또는 mokbang)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출연자들이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인 쿡방과 짝을 이룬다. 요리를 해서 맛있게 드시니 쿡방과 먹방을 넘나드는 프로그램도 당연히 있다. 일석이조다.

처음에는 TV의 맛집소개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했을 성싶다. 소문난 식당을 가서 요리하는 현장인 주방을 보여주면 그것은 ‘쿡방’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맛있게 드시는 장면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기 시작하면 그것은 ‘먹방’이다. 이것이 원형이 되었음직하다. 아마도 시청률도 잘 나왔을 것이다. 제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목하 먹방의 장르화가 시작된다.

출연자들의 실감나는 리액션은 시청자 호기심을 유발하고 몰입을 유혹한다. 식욕을 자극해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을 유도한다. 엔돌핀인지, 도파민인지, 세로토닌인지 알 수 없으나 대뇌는 흥건해진다. 먹는 이의 시연만으로 부족해 스튜디오에서 VPB를 보는 진행자의 리액션도 화면에 파서 넣는다. 그러자 고명하신 MC들도 추임새에 동참한다.

먹방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비판은 ‘푸드 포르노’(food porno)라는 말이다. 요리와 음식, 또는 이를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 영상으로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뜻한다. 극단적인 탐식이나 폭식을 하고 이 과정을 ‘울트라타이트’ 하게 잡은 영상을 만인이 시청하는 것을 관음증 혹은 가학성 성애장면에 비견하는 것일까. 아마도 음식이 무척 억울할 것 같다.

보다 못한(?) 정부는 지난해 7월 ‘국가비만관리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먹방이 폭식을 유발해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역풍이 불었다. 때가 어느 땐데 국가가 먹는 것을 가지고 규제를 한다는 말이냐가 반발의 핵심이었다. 당시 한 언론은 반대가 찬성보다 59.4% vs 39.1% 비율로 우세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먹방 규제는 사실무근이다. 규제라는 말을 사용한 적도 없거니와 법으로 규제할 수도 없다. 국민 건강증진 차원에서 먹방콘텐츠 기준을 정립하고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항의가 빗발치자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권위주의정권에서처럼 방송에 대한 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꺼낸다면 이는 분히 시대착오적이다. 더욱이 ‘비만관리대책’ 차원에서 보건복지부가 이를 거론한 것은 하나의 소극(笑劇 farce)이 되었다. 먹방과 비만의 관계는 마치 갱 영화와 폭력범죄, 게임중독증과 질병처럼 검증되지 않은 논쟁의 영역에 있다. 섣부른 규제론으로 먹방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놓쳤다.

그로부터 1년, 바뀐 것은 없다. 먹방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일부 먹방스타는 인기와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 300만이 넘는 먹방 셀럽도 있다고 한다. 플랫폼도 다양해졌다. 아프리카TV, 트위치, 카카오TV 등이 명멸하고 있다. 오죽하면 먹방의 한국어 발음 표기인 ‘mukbang’이 그대로 전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보통명사화 되었겠는가.

창궐하는 먹방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빈곤과 결핍을 드러낸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먹방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경제침체 속에서 널리 퍼진 한국인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현상”(a symptom of widespread unhappiness amid the country’s economic doldrums)이라고 진단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의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방송PD 출신의 홍경수 교수는 “대중이 발설하지 않고,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 기획의 본령”이라고 했다(<예능PD와의 대화>, 2016). 이 시대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넘어선 대중이 말하지 못하는 결핍을 찾아내는 것’이 방송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먹방 프로그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다수의 허기(虛飢)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베끼기식 동종교배와 남발, 변형된 복제는 기획의 나태, 상상의 빈곤을 의미할 수 있다. 대중이 원하니까 ‘지금 이대로 계속···.’은 문제가 있다. 먹방 방송을 하니까 대중이 보는 것일까,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가 있으니 계속 들이대는 것일까. 먹방, 쿡방이 우리 사회의 기갈과 걸식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이를 뛰어넘을 때가 되었다. 기만적이고 현실도피적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우리나라 국민 절반은 ‘먹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최근호에 실린 이 내용에 따르면 응답자 51.9%는 먹방 규제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누적된 먹방 프로그램에 마침내 피로증을 보인 것일까. 그야말로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 해라”다. 대중의 새로운 필요와 욕구에 답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현이 절실한 가운데 오늘도 먹방 프로그램은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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