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33] 질펀하게 섹스 하면서 “아차!” 하고 숨을 멈췄다

3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자유로운 새> 저자] 첫 이사회에서는 파블로의 이메일에 적시되어 있는 승대의 비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토한 다음, 1억5천만원 상당의 횡령금액을 회사에 반환할 것을 의결했다. 그리고 승대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이사회 멤버들 중에서 파블로는 이문식의 더미, 헬렌은 승대의 더미였지만 그들 모두 승대에게 불리한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일반적으로 더미는 회사의 정책결정이나 이사회 의결에 있어서 실제 오너의 지시에 따른다. 그런데 파블로와 헬렌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이다. 마리셀은 그들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첫 이사회에서 공금횡령범으로 규정되고 경영권마저 박탈당한 승대는 길길이 날뛰기는커녕 고개를 숙이고서 매일 이문식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원규 앞에서는 미친 늑대였는데, 이문식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이었다.

어느 날 승대가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광주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식당 안은 을씨년스러웠다. 에어컨을 꺼놓고 선풍기만 몇 대 돌아가고 있었다. 파리채를 들고 서 있는 이문식이 그를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권하자 그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문제는 모든 더미들을 장악하고 있는 박 사장만이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박 사장은 윤 사장이 컨트롤하고 있고.”

“이 선배님, 파블로 하고 헬렌도 박 사장이 조종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 두 사람은 이 선배님과 저의 더미들 아닙니까?”

“필리핀 사람들은 신의가 없다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이번에는 박 사장 쪽에 딱 달라붙어 있어. 그 두 사람이 이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네……”

이문식은 고개를 숙이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너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면 너무 억울하니까 가기 전에 윤 사장에 대한 투서협박은 계속해. 그렇게 해서 윤 사장과 박 사장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야 해. 네가 떠난 뒤 이곳의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 만약 네가 투서를 하지 않으면 내가 할 것이야.”

식당 종업원이 라면을 들고 왔다. 이문식의 아내가 아침식사도 하지 못했다는 승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당의 공기가 후덥지근한데 펄펄 끓는 라면그릇이 앞에 놓이자 그는 울컥 진땀을 쏟아냈다. 애가 끓는지 어깨로 숨을 헐떡이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날따라 이문식의 길쭉한 얼굴이 소갈머리가 좁아 옹졸하고 쫀쫀해보였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6일, 승대는 동업자들에게 단체 카톡을 보냈다.

지금 이 사장님과 상의했는데, 이제 그만 하자고 하시네요. 저는 한국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가는 걸로 결정하고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제 주식은 이 사장님께 위임하고 한국으로 빠른 시일 내 돌아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쓰겠습니다.

한편, SNC의 이 상무와 손 실장은 승대가 동업자들끼리의 비밀 합의문을 가지고 SNC 임원들마저 다칠 수 있는 협박을 한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원규가 책임지고 투서를 막아야 한다며 다그쳤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부산남부동문회 박만길 회장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평소에 박 회장은 원규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승대의 투서가 SN그룹의 윤리위원회에 들어가면 자칫 동문사회에 회오리바람이 일 것으로 우려했다. 게다가 SNC의 김석희 대표이사는 박 회장의 A대학교 동기생이었다. 그래서 투서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급히 마닐라로 들어가는 원규와 동행했다. 그때는 이미 OSC의 첫 이사회가 끝난 뒤였다.

6월 7일, 박만길 회장과 윤원규, 고승대 그리고 SNC의 마닐라주재원 이상호 과장이 팬패시픽 호텔의 일본식당에서 만났다. 원규가 먼저 승대를 나무랐다.

“고승대! 그렇게 더럽고 치사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기나 해? 너는 A대학 동문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 업계에서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해! 그러니 무고한 사람들은 끌어들이지 마!”

“자꾸 똑같은 말만 할 거라면 저는 이만 나가겠습니다.”

입을 삐죽이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승대를 노려보며 원규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투서하면 제일 먼저 네 선배인 이 상무가 다쳐!”

“저는 그런 것 모릅니다!”

박 회장이 두 사람을 만류하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러고 나서 승대에게 물었다.

“그 합의문은 너하고 동업자들이 다 함께 서명했지?”

“……네.”

“그 합의문에 SN그룹 임원들 중에 누가 관여했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그 합의문대로 SN그룹 임원들 중 누구에게 커미션을 준 적 있는가?”

“……없습니다.”

박 회장은 승대를 쳐다보며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규가 말했다.

“너의 투서협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런 치졸한 행위는 막장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런 행동만큼은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자 승대가 비틀어진 눈으로 원규를 흘기며,

“흥! 이미 막장으로 간 겁니다. 내 인생이 막장이 되었는데 내가 무서울 게 없지요. 나만 막장으로 만들면 되는 줄 아셨나요?”

그의 눈길이 하도 날카로워 원규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마음은 무고한 SN그룹의 임원들까지 끌고 들어가는 비열한 물귀신 심사였다. 그들 중에는 손 실장처럼 승대를 싫어했던 임원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기회에 나 죽고 너희들 모두도 죽어라! 하는 심사였다. 그들 중에는 이 상무처럼 그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까지 고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심사였다.

더 이상 대화가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던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솔직하게 말하라고 박 회장이 그에게 재촉했다. 그는 윤원규와 박인채가 OSC를 떠나기를 원한다고 했다.

잠시 후, 박 회장의 주선으로 승대가 투서를 안 하는 대신 원규와 인채의 OSC 지분 전체를 승대에게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그제야 승대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제 혼자의 지분만으로도 70%가 되는 것이니 지난주에 했던 이사회의 의결도 뒤집어 버리고 회사 내에서 자기의 경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사람은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회장이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윤 사장, 고 후배! 후련하게 정리해줘서 고맙소! 마음고생들은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시오. 오늘 밤 두 다리 쭉 뻗고 쉬세요.”

본사에 승대의 투서가 들어가 시끄러워질까 노심초사했던 이 과장도 한 마디 거들었다.

“윤 사장님의 어려운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승대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 이 과장님, 감사합니다. 윤 선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헤헤헤!”

원규만이 힘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십 년 인생을 통틀어 잘못한 것도 없이 죄지은 사람에게 이토록 더럽고 치사하게 무릎을 꿇어보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원규의 자존심보다는 무고한 사람들이 원규가 얽힌 문제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되겠기에, 원규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날 밤 이후 두 번 다시 승대를 상종하지 않으리라 원규는 다짐했다.

“오호호호!”

그날 밤 원규와의 합의를 들은 승대의 아내는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얼른 친정오빠 임기택에게 그 사실을 알렸더니 축하한다며 기뻐해줬다. 아내와 처남의 칭찬에 그의 감정은 한층 더 고무되었다. 흥분을 참지 못한 그들 부부는 애들을 다른 방으로 내쫓은 뒤 오랜만에 질펀한 섹스를 즐겼다.

그런데 열락의 순간이 지나간 침대에 누워 실실 쪼개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던 그의 아이큐가 갑자기 아차!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회사에서 나간 후에 원규의 지인과 사업파트너들이 그가 독차지하여 경영하는 회사와 더 이상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일이었다. 겁박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지분을 양도했다는 사실도 조만간 알려지게 되면 그는 인격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서서히 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또 다시 아이큐를 빙빙 돌려본 그는, 원규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한 굳이 그들의 지분을 매입한 후 회사에서 쫓아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분을 매입할 돈도 아까웠거니와 더미 파블로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그들의 지분을 인수한다 하여도 믿을만한 또 다른 더미가 그에게는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오히려 그 두 사람을 계속 회사에 붙잡아두어 그를 돕도록 협박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었다. 낚시 바늘을 빼내주는 대신 그들을 수족관 속에 넣어 관리를 하는 편이 그에게는 훨씬 유리한 것이다. 이제 그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약점을 쥔 즐거움은 비겁한 즐거움이라고 누가 말했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비겁하든 비열하든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었다. 호주머니에 들어간 횡령금을 내놓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도 계속 돈을 우려낼 수 있다면야 그것보다 더한 짓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Leave a Reply

Widgetized Section

Go to Admin » appearance » Widgets » and move a widget into Advertise Widget Z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