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45] 지강헌의 ‘유전무죄’, 우 검사의 ‘거짓진술’?
그대의 시련이 아무리 크더라도 세상의 동정을 받지 마라. 왜냐하면 동정 속에 경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플라톤(BC 427-347)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필리핀바로알기> <자유로운 새> 저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검사가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정에서도 승대와 승대의 변호사는 거짓말만 집요하게 늘어놓았고 공판 검사는 무표정하게 그들의 허위 주장과 허위 진술을 듣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인채가 원규에게 주문했다.
“승대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특히 이세호 상무, 손길영 실장, 이상호 과장. 그들은 승대가 투서협박을 할 때 억울한 피해를 당할 뻔한 너의 A대학동문들이고, 너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너의 지분을 승대가 원하는 가격에 양도하겠다는 굴욕적인 약속까지 했잖아. 그리고 박만길 회장도 그때 그 문제를 주선했던 증인이고.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면 승대의 거짓말이 즉시 탄로 날 것이다.”
“인채야. 나도 알아. 그 사람들도 1심 재판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어. 하지만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주지 않는데 내가 먼저 부탁하고 싶지 않아. 우리 주위에는 자기에게 이익 되는 게 없고 자칫 엉뚱한 불통이 튈까 두려워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잖아. 옳은 일이라도 자기들에게 손해가 갈 것 같으면 뒤에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 우리하고는 가치관이 다르지. 그러니 억지로 부탁하지 말자. 게다가 한때 우리가 연루된 일로 재수 없이 억울한 피해자가 될 뻔했던 사람들에게 부담을 줘서도 안 돼. 외롭더라도 우리의 힘만으로 끝까지 싸워보자!”
2심 재판부의 판결은 2012년 9월에 내려졌는데 역시 무죄였다. 고승대와 이문식의 입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승대는 우선 처남이자 원규의 대학 동기인 임기택이 전달해 준 이메일을 증거로 첨부하여 원규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송수홍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받아 본 원규가 인채와 국제통화를 하며 연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의 표정은 몹시도 곤혹스러워 보였고,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인채야, 판결문의 첫째 취지에 보면, 피고인은 피해회사의 정관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여 자신의 임금을 지급받았고 같은 절차를 통해 공소사실에 기재된 수당을 지급받았다. 고 되어 있는데……”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회사의 정관에는 임원과 이사를 포함한 직원 연금, 퇴직, 보너스, 또는 인센티브의 다른 유형 또는 급여 계획은 이사회의 권한이라고 되어 있어. 즉, 등기 임원인 승대의 급여와 수당은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야. 그런데 공소사실에 기재된 수당이 지급되었던 시기에는 이사회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개최된 이사회에서 피고인에게 지급된 금액은 횡령이므로 회사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의결했었어. 판사가 어떤 이유로 그런 허위 사실을 판결취지로 삼았을까?”
원규가 속이 썩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인채야, 두 번째 판결취지도 엉터리다.”
“그래? 읽어줘 봐.”
“이 사건 수당은 주로 피고인 가족의 주거비용, 전기료, 수도료, 전화비, 피고인 자녀의 학비 등인데 위 비용들은 모두 피해회사가 해외에 거주하는 피고인과 그 가족을 위하여 지출한 복지비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인채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해외에 거주하는 피고인과 그 가족을 위하여 지출한 복지비용?”
“그러게. 혹시 판사는 OSC가 한국에 있는 재벌기업이라고 착각한 게 아닐까? 승대를 한국회사에서 필리핀 주재원으로 파견했다고 착각한 게 아닐까?”
“그리고 복지비용이라 할지라도 피고인이 지출한 금액은 이사회의 의결도 없었고, 투자약정의 만장일치 합의 규정도 위반하여 불법적으로 지출한 것인데…… ‘생활형 횡령’은 무죄라는 거야, 뭐야?”
“여기 또 세 번째 판결취지도 웃긴다. 이 사건 수당은 2년 동안 6천8백만원이 지급되었는데, 위와 같은 액수는 피고인이 주재원으로 근무하였던 SNC를 비롯하여 필리핀에 주재원을 파견하는 다른 회사들이 지급하는 통상의 수당보다 작은 금액이다. 송 판사는 정말로 OSC를 한국의 재벌급 회사와 비교해서 판결했다! 그리고 승대를 필리핀 주재원으로 판단한 게 맞다! 이 판결은 심각한 사실오인이다!”
“어허! 이런 멍청한……!”
“여기 네 번째 판결취지는 더 웃긴다. 그 금액도 피해회사의 규모, 피고인이 경영에 기여한 정도, 즉 피고인이 경영하는 동안 피해회사는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다는 것에 비추어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무죄란다! 허허……!”
“뭐야? 그게 판결문이야? 아니면 소설이야? 왜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판결문에 올리는 거야. 승대가 언제 회사를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어? 흑자였던 회사를 적자로 만든 장본인인데!”
“혹시 승대가 서류를 위조해서 판사에게 보낸 것은 아닐까? 어떻게 그런 허위 사실을 피해자에게 확인하지도 않고 증거로 채택하였을까?”
“승대 변호사가 판사를 구워삶은 모양이다. 이건 뭐…… 짜고 친 고스톱 같아.”
두 사람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것은 죄진 사람을 혼내 줄 힘이 없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었다.
원규의 지인 중에는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박해석 교사가 있었다. 박 교사는 원규의 탄식을 듣고는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라는 법률용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윤 사장님, 이것은 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증거를 채택할 것인지, 또 어떤 증거에 의해 범죄사실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법관에게 일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증거가 될 수 있는 능력증거능력·證據能力까지 법관의 판단에 일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거능력은 법관의 마음대로 판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 판단은 경험 법칙이나·논리법칙에 합치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판결이유에 표시된 증거가 경험법칙이나 논리법칙에 어긋난 때에는 ‘사실오인’이 됩니다. 만약 송 판사가 판결문에 적시한 4가지의 판결취지가 모두 논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허위주장을 증거로 인정한 것이라면 명백한 ‘사실오인’이 될 것입니다.”
형사소송법 307조에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송 판사는 승대가 제출한 어떤 위조서류를 물증으로 채택했을까? 아니면 물증도 없이 승대의 허위주장을 사실로 인정했을까?
어느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이렇게 판단했다.
“만일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자가 있다면 검사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윤 사장님은 변호사 없이 재판을 진행했으니,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비는 고승대의 변호사와 수많은 사건들에 둘러싸여 윤 사장의 사건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검사와의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처음부터 자명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