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88올림픽 직후 “유전무죄 무전유죄” 남기고 떠난 지강헌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그들은 잊혀졌지만, 그들이 남긴 말은 갈수록 뇌리에 깊이 박혀온다. 탈주범 지강헌 등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다.

서울올림픽 폐막 직후, 전두환과 5공청산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 10월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25명 중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했다. 이른바 ‘지강헌 사건’이다.

이 사건은 도중에 몇몇은 경찰에 연행되거나 자수하고 주범 지강헌 등 4~5명이 행당동, 안암동과 신촌 형제갈비 등에 신출귀몰 하듯 나타났다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사살되거나 자살함으로써 9일만에 막을 내렸다. 탈주범 중 지강헌(당시 35살)은 숨지기 직전 마지막 인질극 와중에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는 등의 말을 남겼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은 수십억원 사기 및 횡령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지강헌 등이 처음 탈주한 날은 토요일, 사건 종결일은 다음 주 일요일이었다. 기자 초년병이던 필자를 비롯한 서울시내 신문·방송·통신사의 사회부 사건담당 기자 대부분은 그 기간 내내 탈주범들이 묵을 만한 지역의 관내 경찰서에서 경찰들과 밤을 같이 새며 추적에 나서야 했다.

만 29년이 지난 오늘, 이 사건에 대해 드는 상념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 다른 하나는 기자로서의 개인 감상이다.

먼저 지강헌이 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은 이후 얼마나 개선되고 이를 위한 노력은 구체적으로 진행돼 왔나? 아니다.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2014년)이 이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두렵고 안타까운 것은 약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다. 그 자리를 ‘목소리 큰 집단이기주의’가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은 부끄러운 고백이다. 필자는 당시 한겨레신문 기자로 서대문·마포·서부경찰서(현재는 은평서 등으로 훨씬 확장됨) 관내 사건·사고 등을 취재했다. 이른바 1진 기자들이 있는 서대문서가 거점이었다.

사건 마지막 당일 나는 지강헌 등이 마지막 인질극을 벌이던 북가좌동 고아무개(당시 50살)씨 집 대문과 담벼락에 기대어 집 안의 동정을 살피며 취재중이었다. 낮 12시 조금 지난 시각 총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범인들 시신이 들것에 실려나갔다. 1시간이나 지났을까 사건팀장(당시는 시경캡으로 부름)의 ‘삐삐’가 왔다. 전화하니 “한명이 살아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있으니 잽싸게 이동하라”는 것이다.

그 순간 ‘어이쿠, 8일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는데 또 언제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환자실 밖에서 3시간여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적어도 그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마지막 생존자, 지강헌이 숨을 거뒀다는 거였다.

나의 안일함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 끊어진 데 대해 안도하던 이기심과 우매의 역설은 후회 막급이 되어 지금껏 지울 수 없는 미안함이고 죄스러움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한 마디 남기고 떠난 지강헌 등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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