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상투적인 ‘추석 인사말’ 이제 그만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등으로 추석인사를 전하는 단문장과 이미지가 ‘폭주’한다. 최근 3~4년 사이에 이메일에서 핸드폰 문자메시지와 카톡 등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내용에다, 특히 수신자를 특정하지 않고 단체로 보내는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미지의 경우 조금 특이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발신인을 달리해 다시 도착한다. 말 그대로 ‘인사 베끼기’에 ‘인사 공해’인 것이다.

더욱이 이름도 모르거나, 평소 교류가 거의 없던 사람들한테서 오는 경우도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인이거나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이다.

이같은 일을 우리는 연중 최소한 4차례 반복 경험한다. 지금부터 따지면 추석을 필두로, 성탄절, 연말연시와 설날 등이다. 요사이는 부처님오신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한가위 같은 명절이나 성탄절·부처님오신날 등에 인사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고, 그저 형식적인 인사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보내는 사람의 의도에 과연 무슨 보탬이 될까?

단 한 문장, 단 몇 단어의 메시지라도 상대방을 떠올리며 정성스레 보낼 때 그와 나 사이에 공감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진화로 ‘SNS 시대’가 고도화할수록 아날로그적 정서와 품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요즘이다. 좀처럼 다시 없을 ‘열흘간 추석연휴’가 문자메시지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필자는 이같은 생각을 종종 글이나 말로 옮겨왔다. 그 연유가 있다. 직접 겪은 두가지 에피소드를 들면서 마친다.

#1. 1971년께 일이다. 하루는 집에 네덜란드 우표가 붙은 연하장 100여장이 배달됐다. 당시 기자가 살던 강동구(당시는 성동구) 박모 국회의원(훗날 국회의장 역임)이 보낸 것이다. 고급스런 엽서에 담긴 풍경사진과 수신자만 다를 뿐 내용과 주소지(필자가 살던 집)가 모두 똑같았다. 아마도 우리 집 주소만 출국때 가져갔거나 우릴 통해 다른 수신인들에게 전해주길 바래서였을 터다. 연하장과 당시 그 비싼 우편료는 모두 세금으로 충당됐을 것이다.

#2. 2001년 초 어느 상가에서 친구 국회의원을 만났다. 바로 며칠 전 그가 보낸 연하장을 보고 속이 상해있던 터였다. “자넨 연하장에 서명도 인쇄해서 보내나? 글씨는 분명 자네 것이 맞는데, 싸인을 한 건 줄 알았더니 인쇄한 거더군.” 나는 필체는 ‘필기체’인데 직접 쓴 게 아니고 인쇄된 것 같으면 손에 침을 발라 잉크가 묻어나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그가 보낸 것 역시 잉크가 번지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하여튼 기자들은 까다로워. 만명 넘는 사람들 어떻게 일일이 싸인해서 보내나?” 내가 답했다. “친구야, 연하장이 뭐라고 생각해. 1년 동안 받는 사람과 나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홀하진 않았는지 그가 잘 지내는지, 그런 거 생각하며 보내는 것 아닌가? 설령 본문은 모두 같다고 해도 싸인이라도 받는 사람 얼굴 떠올리며 해야 하는 것 아닌가?”?현역인 그는 지역민들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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