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SBS ‘웃찾사’ 화려한 부활 그리고 KBS 개콘 수화방송을

[아시아엔=이상기 발행인] 나는 어려서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이었다. 라디오시대엔 김영운·고춘자 선생의 만담 프로를, 60년대 말 텔레비전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웃으면 복이와요’를 거의 안 빼고 즐겼다.

이후 중고교 시절은 입시라는 개인사와 유신시대라는 시대사가 겹쳐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20년 가까운 공백이다. 이후 80년대 중반 ‘유머1번지’가 등장해 고 김형곤씨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할 때는 날카로운 풍자에 같이 웃으면서도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곤 했다.

필자는 코미디와 관련해 때론 반갑고, 때론 애틋하고, 때론 어처구니 없는 기억이 겹쳐있다.

하루 종일 일로, 또는 사람들로 인해 지친 내게 코미디 프로보다 더 좋은 위로제는 없다. 한수산의 <부초>에서 나타나듯 코미디언 혹은 어릿광대들의 삶은 애잔하기만 해 눈물난다. 그런가 하면 종종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코미디는 저질이다”라며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나서 핏대 세우는 걸 자주 접했다. 나는 “그대 너무 고상한 님이시여, 그대는 코미디언들이 이웃을 웃기려고 얼마나 속으로 울어야 하는지 잠시라도 귀 기울인 적 있나요?” 묻고 싶다.

내 청소년 시절에 가장 영향을 준 책은 영웅전도, 세계명작도 아니다. 1971년도 몇월호인지는 잊었지만 <여성동아> 부록으로 나온 ‘세계유머집’이다. 지금도 점잖게 유행하고 있는 유머의 원전은 대부분 그 책에서 본 것들이다. 당시 여성동아는 그것 말고도, ‘동서일화집’ ‘세계만화걸작선’ ‘세계명화선’ 등 참으로 괜찮은 읽을거리를 부록으로 냈다.

세계유머집에 등장하는 콘텐츠(당시엔 이 말을 안썼지만)들은 지금도 이따금 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며 삶의 여유를 되찾게 해준다. 그 속에 담겨있는 해학 넘치는 문장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시름도 걱정도 한숨도 덩달아 피식 사라지고···.

필자가 코미디(개그) 프로를 다시 즐겨보게 된 것은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현직대통령들을 맘대로 풍자하던 ‘코미디 전성시대’때다. 비판을 좋아하는 기자근성과 맞물려서였을 것 같다. 물론 어떤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코너도 더러 있다. 젊은이들 언어와 내가 그만큼 동떨어져 있다는 반증일 터다. 그래도 재미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어쩌랴.

나의 대학 시절 <Spoken American English>라는 제목의 썩 괜찮은 영어교재가 있었다. 언어의 4요소 즉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을 이 책에서 상당부분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기초-초급-중급-고급 4권 가운데 중급에 이런 章이 있었다. ‘A fat lady’s dilemma’다. 서커스단원인 그녀는 너무 뚱뚱하여 남들 보기도 그렇고 식욕도 과해 하루는 단장에게 “살을 빼고 싶어요, 단장님!” 하고 말한다. 바로 돌아오는 답. “너는 뚱뚱하기 때문에 여기서 밥 먹고 있는 거 벌써 잊었니?”

최근 SBS가 이 방송국 대표 코미디프로 ‘웃찾사’를 폐지할 방침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뽀식이 이용식씨가 1인시위를 하고, 오늘은 엄용수씨가 웃찾사 CP를 면담했다고 한다. 웃찾사는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건 시청자 입장에서다. 개그맨들 쪽에서 이름 붙이면 ‘웃음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된다.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때론 눈물까지 흘려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폐지이유는 시청률 때문일 거라고들 한다. 그 시간대에 얼마나 더 많은 시청률이 나와야 광고주가 더 붙을까?

개그맨들이 눈물 흘리는 것은 좋은 코너를 만들 때로 제한돼야 한다. 프로가 없어져 일자리와 밥거리를 잃어 눈물 흘리지 않아야 한다. 피디 출신 SBS 사장께서 누구보다 개그맨들의 슬픔과 아픔을 잘 알 것 같다. 재고하여 주시기 바란다. 더 좋은 시간대에 더 멋진 코너로 화려하게 부활시켜 주시길 다시 바란다.

이 참에 하나 더. 아직도 KBS 개콘은 잘 나간다고 한다. 광고도 제법 붙고 그러니 수화방송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럴 진대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많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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