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44] 카지노서 털린 그놈, 필리핀 여성 성노리개로 삼아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필리핀바로알기> <자유로운 새> 저자] 미숙이 마트를 인수한 지 3개월 후, 저녁 늦은 시간에 고추장과 미역 등 반찬거리를 사러 인채와 마리셀이 Q마트에 갔다. 그들은 매주 한 번 정도 미숙의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곤 했었다. 마트에 막 들어서자 미숙이 로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두 여자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미숙은 인채 부부를 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뛰어와 마리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어서 와요, 마리셀! 박 사장님도 오셨네요.”

“장사 잘 되고 있지요? 요즘에는 안마 받으러 오지 않아서 많이 바쁘신 줄 알았습니다.”

“네, 많이 바빠요. 하루 종일 가게에 있다 보니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어서 박 사장님 가게에 가야 하는데…… 잠깐 사무실 안으로 가시지요. 사실은 최근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녀의 사무실이래야 마트의 계산대 뒤에 마련한, 책상 하나와 의자 세 개가 겨우 들어갈 만한 비좁은 장소였다. 인채와 마리셀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로즈와 운전수는 퇴근 준비를 했다.

“문제라니요…… 어떤?”

미숙은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쉰 후 목소리를 낮추었다.

“로즈가 저 몰래 돈을 빼돌리고 있어요.”

깜짝 놀라는 인채와 마리셀에게 미숙은 조심스런 어조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트를 인수한 후 매일 매출이 3만 페소에서 4만 페소 정도 되었다. 그런데 한 달 후 장부와 재고를 정리해 보니 꽤 큰 액수의 돈이 비었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뭔가 잘못 계산했거나 재고 파악에서 실수가 있었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지난달에는 더 큰 액수가 사라졌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직원들 몰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다 바로 오늘 오후 잠시 마트를 비운 사이에 로즈가 현금을 꺼내 자기 가방에 담는 것을 적발했다.

“로즈가 시인했습니까?”

인채가 근심어린 얼굴로 미숙에게 물었다.

“아니오. 딱 잡아떼고 있어요. 그래서 감시카메라에 녹화된 것을 보여줄까 하고 있는데 마침 두 분이 들어오신 거예요.”

“어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안 사장님, 지금부터 조심히 행동하셔야 합니다. 로즈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네요. 잠깐만요! 제가 짚이는 것이 있는데……”

인채가 아내 마리셀을 사무실 밖으로 불러내어 뭐라 속닥거리고 나서 그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고 마리셀은 로즈에게 다가갔다. 운전수는 벌써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미숙은 초조한 기색으로 인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로즈에 대해 제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계시나요?”

“아닙니다. 아직……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제 아내에게 확인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나저나 취업비자는 나왔나요?”

“아직 안 나왔어요. 브로커 얘기로는 다음 달에나 나올 거래요.”

잠시 후 로즈가 퇴근하자 마트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인채가 아내에게 물었다.

“로즈가 뭐래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강 사장을 카지노에서 여러 번 보았다, 한국 사람들 중에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가정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당신도 강 사장 믿으면 안 된다, 고 했더니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혹시 그 사람과 사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해요. 제 느낌으로는 두 사람은 연인관계인 것 같아요. 만약 로즈가 돈을 훔쳤다면 도박 자금이 필요한 강 사장이 시켰을 거예요.”

미숙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허공을 향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어깨가 힘없이 내리 앉았다.

인채는 아릿하고 쓰라린 아픔이 그의 가슴 한 구석을 후비는 것을 느꼈다.

“빨리 더미를 바꾸어야 할 것 같네요. 일단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세요. 내일 아침에 제가 여기에 나와 볼 테니 당분간 로즈에게는 내색하지 마시고 이전처럼 잘 지내시고요.”

그날 밤, 로즈는 강윤길이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미스 안이 제가 돈을 훔치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아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요?”

“어떻게 하긴! 회사 등록서류에 누가 마트의 오너로 되어 있어?”

“그야, 제가 오너로 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류상 그렇고, 실제로는……”

“이런 멍청하기는! 그년이 이미 눈치 챘다면 이제 확 까발려 버려! 내일 마트에 가거든 그년을 당장 내쫓고 다시는 못 들어오게 막아! 법적으로 네가 오너니까 그년은 너에게 아무 짓도 못해.”

“알았어요. 저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만 할게요.”

로즈는 강운길이 방금 그녀에게 시킨 일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하면 미스 안이 불쌍하고 억울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트를 강탈하면 이 남자가 돈을 빼내어 이제까지처럼 카지노에서 탕진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카지노 때문에 그가 아내와 별거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로즈의 몸은 잔뜩 긴장되고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뭐든 강윤길이 시키는 대로만 해 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깊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모든 문제는 그에게 맡기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면 마음이 편했다.

로즈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강윤길이 빙긋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평생 그녀 곁에서 돌보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마트에서 훔쳐 온 돈을 넘겨받았다.

그녀의 옷을 벗길 때에도, 그녀의 알몸을 더듬을 때에도, 그녀의 동굴 속을 헤집고 들어가 몸부림을 칠 때에도 그의 몸은 카지노에 가 있었고, 그의 뇌리에서는 카드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순간 로즈는 강윤길의 애를 낳아 함께 필리핀 곳곳을 그리고 때로는 외국에까지 여행을 다니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열 시경에 Q마트에 간 인채는 가슴이 철렁했다. 마트 앞에 십여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놀라운 일을 구경하는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마트 안에서 나오는 미숙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인채가 뛰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로즈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미스터 박! 이 여자를 당장 데려가시오! 여기는 내 명의로 된 내 가게니 이 여자가 또다시 여기에 나타나면 당장 경찰을 부르겠소!”

로즈는 어제까지 주인으로 깍듯이 대하던 미숙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그녀의 얼굴은 흥분하여 새빨개졌다. 미숙이 벌겋게 짓무른 눈으로 하소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그럴수록 로즈는 더욱 기고만장했다. 마트 앞에는 더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트는 로즈가 단독 주인으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그녀의 소유다. 그녀는 더미일 뿐이라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로즈가 부인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필리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미숙은 모욕죄로 형사고소를 당할 수 있다. 로즈에게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해 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미숙이 마트의 돈을 한 푼이라도 건드리거나 물건을 하나라고 가져가면 로즈가 그녀를 절도죄로 고소할 수도 있다.

이 억울한 사정을 한국의 법정에 호소하여 강윤길을 처벌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판사들과 검사들이 필리핀의 더미와 한국교민 사업가들의 실상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설명해줘도 모르는 체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제출한 물증보다 사기꾼들의 거짓말을 증거로 채택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을 명문대 출신 수재秀才 변호사들이 지원하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인채는 울고 있는 미숙을 달래어 마트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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