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주의 앞장 ‘중국 몽'(中國 夢) 꿈깨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비행기로 중국 베이징을 가려면 발해만 상공을 지나게 된다. 밑을 내려다보니 온통 시커멓다. 항만과 공장 건설로 인한 해안 생태계가 오염되고, 생활폐수 유입으로 중국 연안은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중국 연안에서는 오염이 극심하여 물고기 씨가 말랐다.

중국인의 한해 어류 소비량은 10년 전 10kg에서 33kg로 증가하고 있다. 어부들은 중국 연안을 버리고 한국 연안으로 몰려든다. 중국인들은 본래 어류를 별로 먹지 않는다. 그들은 어류보다 육류, 조류를 많이 먹는다. 육류도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이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 북쪽 사람들도 생선을 별로 먹지 않는다. 남쪽 사람들이 생선을 먹는 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해양국가인 일본인들은 메이지 이전에 소고기를 별로 먹지 못했고 주로 어류로 영양을 취했다. 도쿠가와 막부가 종종 농경에 중요한 소 도축 금지령을 내린 탓이다.

중국 어선들이 검색하던 해경을 붙잡아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도주하려다 촌전(寸前)에 저지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그냥 도둑이 아니라 살인강도다. 서해에 몰려와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우선 해경을 강화하여 대처해야겠지만 부족할 때는 해군도 지원해야 한다. 연평해전, 서해교전 등에서 북한 해군을 상대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한 차례 경고사격 후에는 바로 실탄 사격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국지사 어떤 분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항의하고 시진핑 사과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였다. 성삼문의 후예라는 이 지사는 중국이 공맹의 가르침인 인의(仁義)에 입각하여 행동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스프래틀리 제도의 분쟁에서 인도네시아가 反중국 대열에 섰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는 미국과 맞먹는다. 석유, 고무, 목재 등 천연자원은 무궁무진하다. 중국과 이 해역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나라로서 인도네시아는 필리핀이나 월남과는 급이 다르다. 1955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는 인도의 네루, 중국의 주은래, 이집트의 나세르와 더불어 반둥회의를 주도하여 1960년대의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배 국가로부터 독립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토록 가까웠던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1965년 중공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의 쿠데타와 이를 진압한 수하르토의 역 쿠데타로 원수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공산당을 척결하는 과정에서 30만 이상을 도륙하였는데 대부분이 상권을 쥐고 있던 화교였다. 즉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상대하며 중국인을 다루어봤던 나라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군부독재를 마감하고 민정 이양을 성공적으로 이룬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신임이 두텁다. 인도네시아의 가담으로 이 해역에서 반중대열은 더욱 강한 연대를 이룩하게 되었다. 중국의 도리에 어긋난 횡포에 대해 세계가 공분하고 있다.

제2파나마운하가 개통되었다. 1914년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이 파나마운하를 만든 이래 102년 만에 파나마 정부의 힘으로 운하가 만들어졌다. 이제 보다 많은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이 홍콩 자본으로 니카라과에 운하를 만들어 미국 앞에 파고들려던 계획이 무색하게 됐다.

시대는 중화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중국 몽(中國 夢)을 꿈꿀 때가 아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