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 8일 ‘생전 양위’···13살 그에게 민주주의 가르쳐준 멘토가 있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생전 양위의사를 밝혔다. 아키히토는 1933년 출생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후 1946년 아키히토는 엘리자베스 바이닝이라는 미국인 여자 가정교사에 맡겨졌다. 열세살이라면 멘토의 가르침이 백지에 붓으로 글씨를 쓰듯이 모든 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나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모범국 미국에서 온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바이닝의 소산(所産)이고 그 진수는 합리주의·민주주의·평화주의였다.
아키히토가 양위하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천황이 지위와 역할이 아무리 의전에 머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심신이 이상 없을 때 양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부동의를 표시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천황이 실질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일본은 1192년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이래 줄곧 무사의 우두머리 즉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통치하여 왔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모든 국사가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졌어도 실제권력은 조슈, 사쯔마의 번궐(藩閥)에 있었다.
아베는 조슈 번의 계승자다. 전통적으로 황실은 막부와 생리가 맞지 않았다. 아키히토도 아베와 맞지 않는다.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는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승리로 8부를 넘었다고 할 것이다. 방위상, 문부상에 극우인사를 배치한 것은 그 전단계 행동이다. 아키히토는 마지막 장애다. 한국을 위해서도, 일본을 위해서도 아키히토의 저지가 성공하기 바란다.
아키히토가 노태우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 자신, 환무(桓武)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나와 있는 사실에 한국과 인연을 느낀다”고 소회를 비쳤다. 당시 이 발언은 일본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천황가의 비밀을 밝힌 것도 문제지만,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니 뭐니 하며 한국사를 일본사에 부속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라”고 국사(國士)들을 정면으로 받아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천황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아키히토는 오는 8일 국민에 직접 생전 양위 방송을 할 예정이다. 이것도 아베 등이 야료부릴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듯하다. 그의 연호대로 평성(平成), 평화가 이루이지기를 일본국민의 마음의 거울에 조그마한 돌이라도 던져지기를 바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하인리히 하러라는 오스트리아 산악인과 교유를 가지며 서구문물에 영향을 받았다. 달라이 라마가 중국에 압도당하지 않고 영어를 구사하며 세계와 교유하는 것은 이 덕분이다. 이는 영화 <티베트의 7년>에 잘 그려져 있다. 중국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들은 왕조시대의 관료와 같이 인민을 개·돼지로 본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위민정치(爲民政治)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폭력운동으로 티베트의 자치-궁극적으로는 독립-를 실현하려는 꿈과 행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가 보기에 중국이 세계와 어울리려면 아직 멀었다. 아웅산 수치, 이광요 같은 버마, 싱가포르 수준의 지도자가 아니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가 길러낸 지도자다. 이들을 볼 때는 그 뒤의 영국, 미국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치인들은 이들과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아키히토와 달라이 라마는 현재 일본, 중국 고관대작들의 생각을 훨씬 넘어선다.
한국이 부딪치고 있는 4각 파도를 넘는데 있어서도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