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청춘] 못 부친 ‘봄 편지’ 초겨울 다시 꺼내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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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방초 카페를 차리고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길섶의 ‘노방초 카페’를 들러 메고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혼자 간다. 역마살 끼어 늘 떠나는 몸, 마음 한구석 붙잡아 두지 못하고 늘 어디론가 떠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해를 붙잡고 예전에 걸었던 길을 다시 구걸한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동물이 되어 호기를 부리는 노인의 난(亂)!!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이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며 노방초 꽃 초롱 밝히고 외마디 “세상은 이러하구나!!” 넓고 깊고 느리게 소멸해간다.

봄을 노래하지만 나는 봄을 붙잡고 애달게 떤다. 멍하니 언덕에 이는 아지랑이 일도 없이 혼자 논다. 길섶 민들레는 나의 걸음을 멈추고 추운 봄에 온 ‘얼레지 꽃·망·울’ 가엽다. 가슴 설레는 봄의 유람이다.

들풀과 샛바람의 정감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안식을 나는 아낀다.

아지랑이에서 건지는 詩 한 자락

‘시에라컵’에 번지는 커피 향…

새싹 돋아나는 길섶에 버너를 펴놓고 허술한 ‘노방초 카페’를 차렸다. 주변의 정경을 스케치하며 어설픈 詩 한 자락 건져 싣는다.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하다.

서로 뒤섞인 이때가 좋다.

아지랑이 혼자 논다.

 

불확실한 미래가 일거리다.

미래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쫓기며 살아가는 몸부림

인간사의 역사다.

 

새싹 돋을 때 푸른 생기 휘돌 듯,

희망이 미래를 움직인다.

모든 것은 다가올 미래이고,

다가올 봄도 지나칠 한 때 일뿐.

 

내 독백 너머로 훔쳐보는 표정

요즘은 ‘늙은 노방초’가 물가를 헤맨다. 다리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아 산을 피해 들녘과 수로주변의 풍광들을 내 독백 너머로 훔쳐보며 낡은 시간 흘러가 새로운 세상 밀려오는 표정에 넋을 빼앗긴다.

할 일들을 제치고 괜스레 아라뱃길 운하와 습지 샛강을 서성인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물의 모습과 들풀… 그 언저리에 자리를 잡아 책을 편다. 내가 아직 버리지 못한 세상의 것들을 조근조근 읽어내며 세상과 뒤엉킨 연민의 뿌리를 뒤척인다.

지천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있는 제자리에서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게 이 작은 산책은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의 한구석을 채워주는 일상의 행로다.

몸으로 검증한 걷기와 통찰을 통해 세계에 길을 내고 고통스런 실험으로 나를 개조하며 ‘처음처럼의 마음’을 영혼 깊은 곳에 심는다.

연두 보고파 세상을 뒤로하고…

연두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나던가, 무슨 갈등으로 화가 치밀 때는 멀리 있는 영종도 건너 ‘시도’ 섬(島) 바닷가,

전곡의 임진강, 철원의 한탄강, 그 먼 인제와 홍천의 내린천 등을 가리지 않고 떠돈다. 방랑의 순례와 탐험으로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눕고 또 쏘다니며 광야의 집시로 세상을 뒤로 한다.

물가를 서성이다 외로이 노는 물오리 한두 마리를 만나는 행운의 날도 있다. 마음의 한 자락 끝을 오리물살에 띠워 끝내 닿을 수 없는 오리궁둥이 찰랑찰랑 헤엄쳐가는 그 평화스런 여백의 물길을 오늘도 그린다.

잔잔하게 둥근 원을 그리며 번져나가는 파장은 왜 그리도 평화로운가. 햇빛 받아 반짝이며 수놓는 물방울 무늬…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무늬는 뒤집히며 물에 누어 포근히 잠든다.

봄은 멀리 있지 않아

엊그제는 영종도에 나가 애탕 쑥을 뜯었다. 밭둑에 버들강아지와 들풀의 새싹이 피어나고 곳곳에 봄기운이 움트고 있다. 몇일 전에 생강나무 꽃가지를 꺾어다 병에 꽂아놓으니 온 집안에 향기 가득하다.

이런 때 양지바른 곳에 애탕쑥은 솜털처럼 싹이 올라온다. 이 애탕쑥을 뜯어다가 요리를 하면 늘 상 집에서 같은 음식만 해먹고 밖에 나가 외식을 하는 것과는 달리 봄 향을 맛보는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된다.

애탕쑥으로 만드는 완자국은 조곤조곤 찾아드는 봄의 흙내와 풋내가 코를 찌르는 향을 먹는 것이며 봄을 맛보는 것이다. 애탕쑥은 하얀 눈밭에서도 싹이 올라오는 강인한 들나물이다. 깨끗한 바다모래 언덕이나 개천가 뚝 방에 파랗게 군락을 이루며 돋아난다.

들녘에 나가 봄 마중하기

봄이 찾아드는 지금은 애탕쑥이지만 온 산과 들은 곧 온갖 나물로 그 향기를 가득 채울 것이다. 얼레지 나물이 제일 먼저 나오고 원추리나물에 이어 두릅이 나온다. 취나물은 구실바위 취, 국화수리 취, 나물 취, 곰 취 등 갖가지 모양새의 나물이 다양하게 선보인다.

내 몸으로 겪는 봄맞이 체험…

산으로 들로 달려 나가 봄볕 아래 텐트를 치고 대기를 마시며 온 가족이 흙에 호미질하며 나물을 뜯어 다듬는다. 데치고 끓이고 무치는 요리는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른다.

어떤 따사로운 봄날 가족과 함께 하는 작은 소꿉놀이가 짙은 사랑으로 가족에게 스미는 미묘함은 이런 사소한 일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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