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박상설 전문기자 대담 ‘자연과 삶 속의 행복이란?’

박상설 아시아엔 자연과 삶 전문기자(왼쪽)와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
박상설 아시아엔 자연과 삶 전문기자(왼쪽)와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

[아시아엔=정리 김아람 기자, 사진 김남주 서울대총동창회신문 편집장] 카이스트 이사장,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장,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 제24대 서울대학교 총장 등….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 걸어온 길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직함들이다. 2008년 서울대 총장 재직 당시 서울대학교를 지속 가능한 캠퍼스, 즉 ‘그린캠퍼스’로 선언하고 2030년까지 교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만큼 ‘지속 가능한 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저자 박상설)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1월말, <아시아엔> <매거진 N>의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와 ‘캠프나비’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박상설 기자가 서울대학교에서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과 만났다. 오랜 세월 내공을 쌓인 이들이 ‘자연과 삶’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정리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박상설 전문기자(이하 ‘박’)
이렇게 또 만나 봬 영광입니다. 그간 건강하셨죠?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시는데,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하 ‘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몸 아픈 데는 없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박 선생님에는 못 따라가지만, 전 주로 집 근처 공원이나 남산 등을 산책하는 편입니다. 평일에는 주로 혼자 다니지만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소도 나누곤 하죠. 이렇게 선생님을 만나 뵈니, 캠핑을 자주 다녔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웃음)
혼자 걷는 사람이 참 건강한 사람입니다. 옆에 누가 없으면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잘 타서 술에 의지하고, 그러다 보면 건강이 악화되기 쉽더라고요. 사색하면서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에너지 사용 줄이는 ‘저엔트로피’ 습관 들이자
지난 1월 스위스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다보스포럼이 열렸습니다. 모든 물건을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이하 ‘IoT’)도 주제에 포함돼 있었죠.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데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하죠? 물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퍼져나가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은 무질서(엔트로피) 정도가 증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과학 발전으로 엔트로피가 너무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예, 맞습니다. 물감이 번지는 걸 막을 순 없을지언정, 번지는 속도는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죠. 박 선생님께서 주창하시는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이 엔트로피의 증가속도를 줄이는 생활 아닙니까?
일례로, 종이컵 1억개를 만드는데 여의도 면적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이컵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죠. 엔트로피 증가속도를 조절하려면 낭비를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절약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절약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20대부터 여행할 때 항상 텐트에서 자고, 결혼식 때도 헌 옷을 입는 등 의식주를 최소화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이컵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태국에 더블에이라는 유명한 복사지 제조사가 있습니다. 이 기업은 ‘나무를 쓰는 만큼 다시 심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 농촌 휴경지에 나무 4억그루를 심고 직접 재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억그루를 잘라서 복사지를 만들고, 또 1억 그루를 심고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데 참 인상 깊더라고요. 많은 기업이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걷다 죽는 게 원이라 항상 유언장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자녀들 집을 방문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각자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걱정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 속에 삶을 맡기고 살아갈 뿐이지요.”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걷다 죽는 게 원이라 항상 유언장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자녀들 집을 방문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각자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걱정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 속에 삶을 맡기고 살아갈 뿐이지요.”

사소한 것에도 행복한 사회 꿈꾼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보고 가슴 뛰던 그런 시절이 그립습니다. 부탄처럼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얘기하죠. 자연과 함께 뒹구는 생활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누는 ‘살롱’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예전에 <아웃라이어>(저자 말콤 글래드웰)에서 미국의 한 장수마을의 비밀에 관해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인데, 사람들이 다 장수를 하더랍니다. 연구자들이 의아하게 여겨 조사해보니, 마을 사람들이 울타리 없이 이웃간에 자주 드나들며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문화가 장수의 비결이었죠. OECD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도 ‘휘게’(Hygge)라고 하는 국민정서가 있습니다. 한국에 ‘한’이라는 독특한 정서처럼 말이죠. 친구와의 식사처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건데요, 이런 낙천적인 감성이 행복의 원천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선생님도 하루하루의 소박함에 의미를 두시니 항상 행복한 분 아니십니까.(웃음)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걷다 죽는 게 원이라 항상 유언장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자녀들 집을 방문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각자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걱정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에 삶을 맡길 뿐이지요.

무조건적 발전보다는 ‘행복’이 우선

말씀하신 것처럼 IoT, 3D프린터 등이 등장하면서 4차산업혁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죠. 물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실직사태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 봅니다.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직업’ 아닙니까? 무조건적인 발전보다는, 고용에 초점을 둔 성장이 절실한 때입니다.
네, 이제 개개인이 직접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세상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또,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간 본연의 가치인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바탕이 된 과학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 베를린공대 생산기술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소장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보통은 으레 기술력을 자랑하기 마련인데, “지구보전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명제를 항상 명심하며 연구를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 선생님의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 운동은 굉장히 선구적이지요.

“4차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죠.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직업’ 아닙니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바탕이 된 과학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4차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죠.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직업’ 아닙니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바탕이 된 과학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위해선 인성교육도 중요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 모든 문제가 ‘사람의 문제’인만큼 가정교육도 참 중요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경쟁 사회로 내몰리다 보니 자연과 가까이 할 시간이 없거든요.
동의합니다. 오래 전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사이버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가상현실에 빠진 청소년들이 괴팍해질까 심히 우려를 하더군요. 어릴 적부터 컴퓨터게임만 할 것이 아니라 학교나 가정에서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체험학습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제일 첫 번째니까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체험학습의 기회가 적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 경우는 정부와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저도 새싹멘토링사업,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 등 어린이청소년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래국제재단(이사장 김선동)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선동 이사장은 “음지에서 태어난 잡초 같은 어린이들을 양지 좋은 곳으로 옮겨 자라나게 하는 게 기성세대와 성공인의 몫”이라고도 했죠.

대담 말미, 박상설 기자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묻자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 답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우리나라 종(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고.

“신라종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종을 만드는 주조기술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종의 과학과 예술성을 다룬 <자랑스러운 과학문화유산, 한국 범종>(가제)이 올해 출판될 예정입니다.”

삶에 치여 살아가는 현대인. 늘상 자연 속에서 생활하긴 힘들겠지만, 그 대신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들을 해보면 어떨까? 작은 화분을 사무실 책상에 둔다거나, 주말엔 산과 들로 떠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여유를 즐긴다면 작은 행복이 싹트지 않을까? 이들의 대담을 지켜보며 박상설 전문기자의 저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맑고 소박한 행동과 마음의 풍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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