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박상설 청년’은 가신이와 어떻게 작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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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송종원 육군소장, 공병 3기 육군 공병감 역임, 1월8일 분당에서 별세, 1월10일 대전 국립현충원 안치”

한국전쟁 당시 육군 소위로 만나 67년간 우정을 나눠온 송 장군이 별세한 것이다. 송 장군 며느리(최영선)가 전화로 사망소식을 알려왔다. 나는 “명복을 뼈저리게 빌지만 한국의 형식적 장례식에는 참석 안한다”고 짧게 답하고 끊었다.

그런데 삼오제 지나기 전날 며느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님 묘비에 시를 새기려고 합니다. 박 선생님께서 한 구절 꼭 보내주십시오.”

나는 시를 써서 보냈다. 그런데 국립묘지 규정상 묘비 크기 제한이 있어 내 시를 대폭 줄여서 새기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며칠 뒤 며느라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주신 시문을 다 올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하지만 아버님이 존경하시고 좋아하시는 분께서 좋은 글귀를 주셔서 기뻐하실 2것 같아 기쁘고 뿌듯합니다. 다 담지를 못해 아쉽기만 해요. 이틀간 고심하여 만들어주신 시문을 붓글에 옮겨 잘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 유품과 집 정리 오늘로 다 정리하였어요. 늘 강건하심과 행복함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자부 최영선 올림”

나도 제법 긴 글로 답을 했다. “네, 잘 절충하여 묘비 심플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 주말농원, 홍천의 고즈넉한 눈 쌓인 산간벽지 샘골에 짐을 풀고 ‘외로운 양치기 소년’ Flut 음악에 젖어 먼 산을 바라보며 길을 묻습니다. 슬픔은 슬픔으로 이어지지만 오지 산골에서 책 읽으며 모닥불 지펴 눈으로 보이는 소리, 찬 겨울 바람이 왜 이리도 좋은지요? 람보, 히피를 자처하는 이 할비는 오늘도 머물렀던 흔적의 자리를 아쉬워 하며 마냥 서성입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의 틈 사이를 기민하고 진지하게 인식해 주심에 깊은 고마움 드립니다.”

올해 구순을 맞은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평소 살아서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죽은 뒤 체면치레로 조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16일 5년여 암투병 끝에 사망한 김진미는 45세로 22살부터 나의 멤버로 주말농과 산행을 함께 했다. 8살, 10살 남매를 두고 떠났다. 고향3인 속초에서 화장하였다고 들었다. 나는 장례식 얼마 뒤 진미의 남편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캠핑이나 열심히 하며 잊으라고 했다. 그리고 30만원 짜리 텐트를 선물했다.

지금 이 글은 춘천 집을 나서 서울행 전철 안에서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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